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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인스타는 턱걸이 기록용

by 서가앤필

1.

인스타 @서가앤핏을 운영한 지 5년 차


나는 카톡도 싫어하던 사람이었다. 지금이야 누구보다 카톡에서 제공한 대부분의 기능을 잘 활용하지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핸드폰 속은 나와는 상관없는 세상이었다. 아마도 공공기관에 근무하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그럴 가능성이 높다. 일로서 조직의 정책사업은 홍보하기 바쁘지만 막상 나 자신을 나타내기에는 크게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이직을 할 계획이 없기 때문에 SNS가 포트폴리오라는 생각은 당연히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 SNS 속 다른 사람의 일상을 보며 휴식할 수는 있지만 나의 일상을 드러내는 일은 또 다른 생산적인 일로 여겨져 퇴근 후 온라인 세상에 담아낼 에너지가 남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런 내가 지금은 블로그, 인스타, 브런치 스토리까지 운영하고 있다. 블로그는 잠시 내려놓은 상태인데도 이웃수가 매일 조금씩 늘어나더니 6천 명을 넘었다.


2.

대체 언제부터였을까?


팀장이 되기 전 일을 좋아하던 직원이었다. 아니 그랬던 것 같다. 평일 5일은 거의 매일 야근을 했다. 직원일 때 내내 그랬던 건 아니고 팀장이 되기 바로 직전 부서에서 그랬다. 직원 중 최고참이다 보니 할 일이 많았다. 보이는 일도 많아서 해결해야 할 일도 많았다. 일이 많이 쌓여있기도 했고 쌓인 일을 한건씩 쳐나가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그렇게 일하고도 토요일, 일요일 중 하루는 또 출근했다. 평일 야근할 때 집중력과 주말 조용한 사무실에서 내뿜을 수 있는 몰입감에는 차이가 있다고 해야 할까. 암튼 미묘한 주말의 몰입감을 즐겼다. 주말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는 평일 바쁜 업무를 쳐내느라 미처 챙겨보지 못했던 관련법 같은 것을 찾아보는 맛이 쏠쏠했다.


6년 전 팀장이 되었다. 팀장이 되고 나니 팀원들에게는 그렇게 일하라고 권유할 수 없었다. 내가 일하는 방식이 정답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나는 그냥 그게 좋았을 뿐이고, 각자는 각자의 일하는 방식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무언가 그동안의 삶과는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릴 만한 것이 필요했다. 많이도 말고 아주 살짝.


3.

인스타 시작은 턱걸이 기록용이었다.


헬스장에서 처음으로 트레이너 도움을 받아 턱걸이를 했는데 그날의 기분을 잊을 수 없었다. 몸이 하늘로 부웅 올라가면서 내가 내 몸 전체를 하늘로 올려 보내주는 기분. 그날로 난 턱걸이에 빠져버렸다. 그래서 턱걸이를 기록해 보기로 했다. 턱걸이는 0개에서 1개까지가 가장 오래 걸린다고 했다. 1개를 했으면 10개까지는 의외로 쉽다고 했다. 그렇구나. 그렇다면 0개에서 1개까지의 과정을 영상으로 매일 찍어 올려둬야 싶었다. 턱걸이 성공 과정을 기록한다고 생각했는데 나의 인스타 피드엔 나의 몸변화 과정이 담겼다. 아무 미묘해서 내 눈에만 보였지만. 그렇게 나는 내 몸의 변화에 주목하게 되었다. 이 변화 기록이 어떤 도미노 현상을 불러올지는 예상하지 못한 채...


4.

턱걸이를 기록하겠다며 단순한 목적으로 시작했던 인스타는 요즘 예상치 못한 역할을 해주고 있다. 강의나 북토크 요청이 DM으로 온다. 전화, 이메일, 문자도 아닌 인스타 DM으로의 강의 요청이라니. 공문으로만 요청받던 나에게는 새롭고 신기하다. 확실히 요즘엔 일하는 방식도 많이 바뀌었구나 싶다. 어쩌면 바깥세상은 이미 이렇게 자유롭고 넓게 흘러가고 있었는데 내가 속한 이곳만 정제되어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인스타 소통 방식에서 배우는 게 많다.


결이 비슷한 사람도 만나게 해 주었다. 나의 첫 책 <공무원이여 회계하자>를 읽은 어느 한 직원은 책 속에서 인스타 주소를 보고 찾아왔다고 했다. 릴스와 스토리에 매일 하트를 눌러주더니 얼마 전 직장 내 멘토멘티로 만나게 되었다. 온라인 세상 속 관계가 오프라인으로 연결된 기분이었다.


턱걸이하는 내 모습이 신기해 기록하기 시작한 인스타는 또 다른 세상으로 날 인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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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책 -<몸의 일기>


인스타에 몸을 기록하다 보니 다른 사람은 몸에 대한 기록을 어떻게 하는지도 궁금해지곤 했다. 그러다 몸 기록에 관한 엄청난 책을 발견했다. 무려 평생에 걸쳐 자신의 몸에 대한 변화와 감정을 기록한 책. 다니엘 페낙이 쓴 <몸의 일기>다.


"그렇지만 나, 나는 널 지켜줄 거야. 나로부터도 지켜줄 거야. 내가 네게 근육을 만들어줄게. 신경도 강하게 단련시켜 줄게. 매일매일 널 돌봐줄게. 그리고 네가 느끼는 모든 것에 관심을 가져줄게." 33쪽


"우리 몸에 어떤 변화가 있을 때면, 몇 년 전부터 늘 걸어 다니던 길을 떠올리게 된다. 어느 날 한 가게가 문을 닫고, 간판이 사라지고, 건물이 비고, 임대 공지문이 붙으면, 그제야 그전에, 다시 말해 바로 지난주까지 거기에 뭐가 있었는지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된다." 30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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