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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핍이 있어야 도전이 가능하다

한 번 사는 인생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 #102(D+343)

by 서강


니체가 말하는 불만의 정체

집이 없을 땐 집을 사는 게 꿈이었다.

매일 아침 출근길에 새로 지어진 아파트 단지를 지나며 생각했다. '저기 살면 얼마나 행복할까.' 전세 계약이 끝날 때마다 이사를 다니면서, 내 집에 대한 갈망은 점점 커져갔다.

그렇게 몇 년을 모아 드디어 집을 샀다.

그런데 이상했다. 등기를 마치고 집 앞에 섰을 때, 예상했던 행복감은 찾아오지 않았다. 오히려 허탈함이 밀려왔다. '이게 다야?' 하는 공허한 감정만 남았다.

명품 가방도 마찬가지였다.

20대 내내 명품 가방은 나에게 로망이었다. 백화점 명품관을 지날 때마다 쇼윈도를 유심히 들여다봤다. 언젠가는 저걸 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 30대 초반, 승진 기념으로 평소 갖고 싶던 가방을 샀다. 기대에 부풀어 매일 들고 다녔다. 하지만 한 달쯤 지나자 그냥 가방일 뿐이었다. 특별한 기쁨도, 만족감도 없었다. 그저 어깨에 메는 물건이었다.



불만은 질투에서 시작된다

니체의 말을 곱씹어보니 이해가 됐다.

내가 느꼈던 불만은 사실 '없음'에 대한 질투였다. 집이 있는 사람들에 대한 질투, 명품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에 대한 질투. 그 질투가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고, 동시에 나를 움직이게 했다.

세상과 타인을 향한 불만이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그 뿌리는 나의 내면에 있었다. 남들이 가진 것을 보며 느끼는 결핍감. 그것이 불만으로 포장되어 나타났을 뿐이다.


역설: 결핍이 있어야 도전이 가능하다

아이러니하게도 깨달은 게 있다.

결핍이 있어야 도전이 가능하다는 것.

집이 없었을 때, 나는 목표가 명확했다. 매달 월급에서 얼마를 저축할지, 어느 지역에 집을 살지, 언제쯤 목돈을 모을 수 있을지. 모든 것이 구체적이었고, 그 과정이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했다.

하지만 집을 사고 나니 다음 목표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무기력해졌다. 불만이 사라지니 도전할 이유도 함께 사라진 것이다.

불만과 질투는 나쁜 것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나를 움직이게 하는 연료였다. 채워지지 않은 무언가가 있었기에, 나는 더 나은 내일을 위해 노력할 수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살 것인가

이제는 불만과 질투를 부정하지 않으려 한다.

대신 이렇게 질문한다.

'이것이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인가?'
'단순히 남들이 가진 것을 탐내는 건 아닌가?'

모든 결핍을 채우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결핍을 동력 삼아 나아가되, 그 과정 자체를 즐기려 한다. 목표를 이룬 후에 찾아올 공허함도 미리 예상하고 받아들이려 한다.

그리고 새로운 결핍을 찾을 것이다.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 아직 이루지 못한 무언가. 그것이 나를 계속 움직이게 할 테니까.

삶은 결국 채우고 또 비우는 과정의 반복이다. 완벽하게 채워진 순간은 아마 오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게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결핍은 나를 움직이는 엔진이다.
채워진 순간의 허탈함까지도 삶의 일부임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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