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사는 인생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 #108(D+349)
책장을 덮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펜을 내려놓았다. 손이 저렸다. 한 글자 한 글자 옮겨 적으면서 나도 모르게 숨을 참았던 모양이다. 니체가 함께 한 109일, 가장 큰 변화는 막내 공주가 내게 니체 쏭이라는 닉네임을 붙여준 것이다. 수많은 철학자 가운데 니체의 언어가 뼛속 깊숙이 스며들었다.
"한 번 사는 인생"이라는 말이 새삼스럽게도 가슴에 와닿았다. 누구나 다 한 번 산다는 건 상식 중의 상식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우리는 늘 두 번째, 세 번째 인생이 있는 것처럼 산다. 내일이 있으니까, 다음 달이 있으니까, 내년이 있으니까. 그렇게 미루고 미루다 보면 어느새 시간은 저만큼 가버리고.
필사를 하면서 깨달았다. 아, 이렇게 천천히 한 글자씩 따라 쓰다 보면 작가의 호흡이 느껴진다는 것을. 그냥 눈으로 읽을 때는 쓱 지나쳤던 문장들이 손끝을 거쳐 가면서 전혀 다른 무게로 다가왔다. 특히 "어떻게"라는 말이 자꾸 눈에 밟혔다. 어떻게 살 것인가. 이게 단순한 물음이 아니었구나. 배움이란 게 결국 이 "어떻게"를 찾아가는 과정이었구나.
나는 그동안 뭘 했나 싶다. 거창한 꿈만 꾸느라, 정작 중요한 것들은 놓치고 살았다. 남에게 피해나 주지 말자. 그게 첫 번째다. 물질이든 마음이든, 내가 편하자고 남을 불편하게 만드는 일은 하지 말아야겠다. 생각해 보면 별것도 아닌 일들이 쌓여서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고, 그게 또 돌고 돌아 나한테 돌아오더라.
김종원 작가는 "아름다운 거절"로 마침표를 찍었다. 거절할 때 상대방의 마음이 다치지 않게 하는 것. 그게 내가 배워야 할 몫이구나. "no"라고 말하면서도 상대를 존중할 수 있는 방법. 단호하되 따뜻할 수 있는 말. 그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연습해야겠다. 거절당하는 사람도, 거절하는 나도 상처받지 않도록.
그리고 이쁜 말을 해야겠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참 우습다.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는 가장 함부로 대하면서, 낯선 사람에게는 예의를 차린다. 순서가 바뀐 거다. 오늘부터라도 고마운 일에는 "고맙다"라고, 미안한 일에는 "미안하다"라고, 사랑하는 마음이 들 때는 "사랑한다"라고 말해야지. 내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인생이 소풍이라면, 나는 지금까지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소풍의 진짜 의미는 그 길을 가는 과정 아니었나. 지금 당장 소풍을 마쳐도 후회 없을 만큼 살고 있느냐고 물으면, 나는 선뜻 그렇다고 대답할 수 없었다. 그게 아프더라.
필사를 마무리하는 이 순간, 나는 다짐한다.
아주 작은 것부터. 남에게 피해 주지 않기.
물질로든 마음으로든 함부로 대하지 않기.
거절할 때는 상대방의 마음이 다치지 않도록 말하기.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이쁜 말 건네기.
오늘 하루를 마지막인 것처럼,
그러나 내일도 있을 것처럼 살기.
거창하지 않다. 그저 지금 이 순간을, 이 하루를, 조금 더 또렷하게 살아보려는 것뿐이다. 한 번 사는 인생이니까. 필사하며 깨달은 건 결국 이것이었다.
배움이란 이 "어떻게"를 계속 묻고 깨달아가는 것이라는 것을. 인생은 언젠가 이루어질 먼 미래가 아니라, 바로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사느냐의 연속이라는 것을.
노트에 그려진 웃는 얼굴 스티커가 나를 보고 함박웃음을 보내고 있다. 괜히 나도 웃음이 난다. 그래, 웃으면서 살아야지. 한 번 사는 인생, 억지로가 아니라 진짜로 웃으면서. 어떻게? 바로 지금부터. 지금 소풍을 마쳐도 후회 없을 만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