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 / #03(D+353)
괴테는 말했다. "분열시켜서 지배하라, 멋진 구호다. 단결시켜서 이끌어라, 더 멋진 구호다." -괴테
이 문장을 필사하며 나는 한참을 멈춰 섰다. 요즘 같은 시대에 이보다 더 절실한 말이 또 있을까. 우리는 참으로 좋은 시대를 살고 있다. 배우고 싶으면 나이가 들어서도 만학도가 되어 대학 강의실에 앉을 수 있고, 평생학습관에서 새로운 지식을 쌓을 수 있다. "이제 우리는 더 함께할 수 없습니다!", "생각이 다르니 공존할 수 없네요!", "그냥 우리끼리 가자, 말이 안 통하네!" 같은 말들이 난무하는 곳에서, 나는 이런 소리가 가득하다고 느꼈다.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힘을 더해서 좋은 생각을 결합해서 하나가 되기보다는, 오히려 분열해서 작게 떨어져 나간다. 하지만 이런 현실은 비단 지금의 문제만은 아니다. 지금도 우리가 사는 곳 여기저기에서는 이런 소리가 가득하다.
나는 단결을 지향하는 사람이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만나 대화하고, 이해하며, 함께 나아가는 것을 믿는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만난 배움의 공간에서는 정반대의 모습을 목격했다. 나이 든 사람들이 모이면 당연히 이해심이 깊어지고 포용력이 넓어질 거라 기대했다. 인생을 오래 산 만큼 다양한 경험이 쌓였을 테고, 그만큼 타인을 이해하는 폭도 넓어졌으리라 믿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오히려 아집은 더 강해지고, 이기심은 더 단단해지고, 세상을 이분법으로 나누어 편을 가르는 모습이 더 두드러졌다. 그 안에서 나는 선택을 해야 했다. 그리고 내가 내린 결론은 빠져나오는 것이었다. 비겁하다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싸우지 않고 도망쳤다고, 끝까지 설득하려 노력하지 않았다고 비난받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역겨움이 목까지 차올랐고, 그 안에 섞여 있을 자신이 없었다. 단결을 외치는 사람이 단절을 선택했다는 모순. 하지만 때로는 썩은 것과 단절해야만 건강한 단결을 만들 수 있는 법이다. 분열시켜 지배하려는 사람들의 틈바구니에서 소모되느니, 차라리 그곳을 벗어나 진정한 연대를 찾아 나서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괴테가 말한 '단결시켜서 이끌어라'는 구호는, 어쩌면 누구와 단결할 것인가를 먼저 선택하라는 의미가 아닐까. 무조건적인 포용이 아니라, 함께 나아갈 수 있는 사람들과의 진정한 연대. 그것이 내가 찾아야 할 길이라는 걸, 이번 경험을 통해 깨달았다. 나는 여전히 단결을 믿는다. 다만 이제는 안다. 모든 사람과의 단결이 아니라, 진정으로 함께 걸어갈 수 있는 사람들과의 단결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 길을 찾기 위해, 나는 때로는 용기 있게 빠져나올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
최근 경주 APEC 정상회담에서 한국이 핵추진 잠수함 연료 공급과 관련한 협상에서 긍정적인 결과를 얻어냈다는 소식을 들었다. 수십 년간 진전을 보지 못했던 우리 군의 숙원사업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열린 것이다. 이것은 진보나 보수를 떠나, 순수하게 대한민국의 자주국방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정말 의미 있는 외교 성과라고 생각한다. 중국과 북한이 급격한 해군력 증강에 나서는 상황에서, 우리도 전략적 균형을 갖출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한 것이다.
그런데 이런 성과를 두고도 사람들은 여전히 편을 나눈다. 진보 진영은 "미국에 굴종한 협상"이라 비판하고, 보수 진영에서도 "세부 내용이 불투명하다"며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 정작 중요한 건 대한민국의 안보와 국익인데, 사람들은 각자의 정치적 사상에 사로잡혀 그것조차 제대로 보지 못한다.
이게 바로 이분법의 함정이다. 나와 같으면 무조건 좋고, 나와 다르면 무조건 나쁘다. 상대 진영에서 한 일이면 그게 무엇이든 일단 비판하고 본다. 국익이고 뭐고,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오직 '우리 편이냐, 아니냐'뿐이다.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안타까움을 넘어 답답함이 밀려온다. 우리는 언제쯤 이 굳어진 틀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언제쯤 사안 자체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을까. 언제쯤 "이건 잘했네"라고 인정하고, "저건 아쉽네"라고 비판할 수 있는, 그런 성숙한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을까.
괴테가 말한 '단결시켜서 이끌어라'는 구호는, 바로 이런 순간에 더욱 절실하게 다가온다. 우리는 분열시키는 것에 너무 익숙해져 있다. 나와 너를 가르고, 우리와 그들을 나누고, 진영을 세워 서로를 향해 돌을 던진다. 하지만 정말 필요한 건 단결이다. 사상과 이념을 넘어, 대한민국이라는 이름 아래 함께 나아가는 것. 잘한 것은 박수치고, 부족한 것은 채우며, 서로 다른 생각이 건강하게 공존하는 사회. 그것이 진정한 민주주의이고, 성숙한 공동체의 모습이 아닐까.
결국 문제는 간단하다. 우리가 무엇을 중심에 둘 것인가. 진영 논리인가, 아니면 국익인가. 내 편 네 편인가, 아니면 우리 모두의 미래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