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 / #07(D+357)
이십 년도 훨씬 지났다. 하지만 그날의 손길은 여전히 따스하다.
사업 실패 후 주머니가 텅 빈 채 거리를 헤매던 시절이었다. 사람들은 하나둘 고개를 돌렸다. 어제까지 형, 동생 하던 이들이 오늘은 내 전화를 받지 않았다. 가난은 전염병처럼 사람들을 물러서게 만들었다. 나는 그제야 알았다. 인간관계라는 것이 얼마나 쉽게 무너지는지를.
그런데 한 사람이 있었다.
그이는 자기 돈도 아니었다. 남에게 빌린 돈이었다. 그럼에도 내 손에 백만 원을 쥐여주었다. "이거라도 쓰세요." 그 짧은 한마디에 담긴 무게를 나는 평생 잊을 수 없다.
백만 원. 누군가에게는 그 시절 한 달 월급이고, 누군가에게는 가벼운 저녁 술값일 수도 있는 돈이다. 하지만 그날 내게 그 돈은 세상이었다. 아니, 돈 자체보다 더 큰 것이 있었다. 모두가 외면할 때 건네진 그 한 손길. 그것이 내게 말해주었다.
"당신은 아직 혼자가 아닙니다. 힘내세요."
실패한 사업을 회복한 후, 지인에게 받은 은혜를 제일 먼저 갚았다. 아니, 갚았다는 표현조차 부족하다. 돈으로 갚을 수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그이에게 물질적으로 보답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나는 더 큰 빚을 졌다. 인간에 대한 믿음이라는 빚을.
그래서 나는 자녀들에게 잊을만하면 말한다.
"세상을 살다 보면 수많은 사람을 만나게 된다. 하지만 진짜 사람은 많지 않다. 그 진짜 사람을 알아보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리고 평생 기억해라. 그분이 우리에게 베푼 은혜를."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인다. 받은 은혜에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갖기를. 이것이 내가 아이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가장 큰 유산이라 믿는다.
어머니는 홀로 우리를 키우셨다. 가난했지만 어머니는 단 한 번도 도리를 잊으라 가르치지 않으셨다. "사람은 배가 고파도 예의는 지켜야 한다. 나보다 더 힘든 사람을 돌아볼 줄 알아야 한다." 어머니의 그 말씀이 내 뼛 속까지 스며들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가장 어려운 순간에도 사람대접을 잃지 않으려 애썼고, 덕분에 그 귀한 사람을 만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요즘 세상은 빠르다. 관계도 빠르고, 의리도 빠르고, 감사도 빠르고, 손절도 빠르다. 모든 것이 스쳐 지나간다. 하지만 나는 스며들듯 느리게 살고 싶다. 이십 년 전 그 손길을 아직도 기억하며 사는 것처럼. 천천히, 그러나 깊이.
은혜를 아는 것. 도리를 지키는 것. 이것이 사람이 사람다울 수 있는 마지막 보루가 아닐까. 그이는 알까. 자신이 건넨 백만 원이 한 사람의 인생을 얼마나 단단하게 세워주었는지. 그 돈으로 나는 다시 일어섰고, 그 마음으로 나는 더 나은 사람이 되려 애쓰며 살아왔다.
지금도 가끔 그때를 떠올린다. 모두가 등을 돌릴 때 홀로 다가와 내 손을 잡아준 그 사람을. 그리고 다짐한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겠다고. 금액이 아니라 마음이 전해지는, 그런 사람으로 살겠다고.
백만 원의 무게는 지금도 내 어깨 위에 있다.
하지만 그것은 짐이 아니 날개다.
필사로 내면 다지기 오픈 톡방에서 함께 내면을 다져 나갔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