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 / #08(D+358)
독서모임에서는 해마다 '원워드'라는 걸 쓴다. 새해 목표를 한 단어로 압축하는 것인데, 작년 내 원워드는 '행복하게'였고, 올해는 '꾸준하게'와 '알아차림'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처음엔 형식적으로 가볍게 생각했다. 한 단어로 일 년을 바꿀 수 있다니. 그런데 묘한 일이 벌어졌다. 올해 나는 정말로 꾸준했다. 필사와 글쓰기를 358일째 하고 있다. 하루도 안 쉬었다. 엉금엉금 거북이처럼 실천 중이다. 사실 거북이보다 더 느렸을지도 모른다. 어떤 날은 겨우 한 문장, 어떤 날은 세 줄. 그래도 멈추지 않았다. 그게 전부다.
그런데 26년 신년이 되면 또 난리가 날 것이다. 새해 목표, 버킷리스트, 다이어리 꾸미기. SNS는 각오로 넘쳐날 것이고, 나도 아마 거기 한 몫할 것이다. 문제는 매년 그랬다는 거다. 매년 세우고, 매년 잊었다.
문득 멈춰 서서 생각한다. 내 꿈이 매년 바뀌는 게 정상인가? 작년엔 영어, 재작년엔 운동, 그전엔 요리. 다 어디 갔나. 작심삼일일지언정 꿈이 없는 것보다는 낫다. 다행히도 내게는 변하지 않는 한 가지 필사가 있다.. 필사를 하면서 내면이 단단해지고 무게를 알 수 없는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마음을 잡는 법을 배웠다.
요즘 사람들은 모든 것을 빠르게 훑는다. 기사 제목만 보고, 영상은 2배속으로 돌리고, 책도 요약본으로 본다. 나도 그랬다. 그렇게 많은 것들이 스쳐갔다. 눈으로 보고, 고개를 끄덕이고, 금방 잊었다.
그런데 필사는 달랐다. 한 글자 한 글자 손으로 옮겨 적다 보면, 문장이 스치는 게 아니라 스며들었다. 빠르게 지나갈 수 없었다. 손이 느리니까, 마음도 천천히 따라갔다.
깃털보다 가벼운 마음, 그게 뭔지 이제 안다. 바람만 불어도 날아가고, 누가 뭐라 하면 휘청이고, 아침에 일어나면 벌써 지쳐있는 그 마음. 주변을 보면 그런 사람이 의외로 많다. 아니, 사실 대부분 그렇다. 우울증으로 병원을 다니는 사람, 극단적인 생각에 시달리는 사람.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흔들리고 있는 사람, 필사는 그 가벼운 마음에 무게를 더한다. 종이 위에 글자로 눌러 담는다. 손끝에서 시작된 문장이 팔을 타고 올라와 가슴에 닿는다. 그렇게 스며든다.
내가 필사로 내 마음을 다지듯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할 수 있지 않을까. 지금은 소수의 인원이 참여하고 있다. 좀 거창하게 들리겠지만, 필사 전도사가 되고 싶다. '전도사'라니,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하지만 진심이다. 매일 한 줄씩이라도 손으로 쓰다 보면, 마음이 꾹꾹 눌러 담은 글자만큼은 가라앉는다. 스치는 대신 스며든다. 그게 내가 358일 동안 배운 전부다.
그리고 필사하면서 깨달은 것들을 글로 쓴다. 기록으로 남긴다. 이게 내 꿈이다. 26년에도, 27년에도, 아마 그 이후에도. 이번엔 바뀌지 않을 것 같다. 358일을 견딘 거북이의 감이다.
아침 햇살이 노트 위로 비친다. 오늘도 한 줄 쓸 시간이다. 천천히, 스며들도록.
필사로 내면 다지기 오픈 톡방에서 함께 내면을 다져 나갔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