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 / #13(D+363)
누군가 나를 찾는다. 그것만으로 살아갈 이유는 충분하다.
1970년대 후반, 나는 경상도 시골 국민학교를 다녔다. 학교 가는 길은 늘 똑같았다. 골목 모퉁이 담벼락. 낡은 슈퍼마켓 간판. 흙먼지 날리는 비포장도로. 그 길을 걸으며 나는 매일 아침 똑같은 생각을 했다. 오늘도 아무 일 없이 지나가겠지.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이었다. 평소처럼 집으로 가려다 문득 다른 길로 접어들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그저 궁금했다. 저 골목 끝엔 뭐가 있을까. 그 길은 내가 아는 동네가 아니었다. 낯선 골목. 낯선 집들. 낯선 담벼락 너머로 들리는 낯선 소리들. 나는 길을 잃었다.
어린아이의 길 잃음은 어른의 그것과 다르다. 어른은 길을 잃으면 당황하고, 짜증 내고, 누군가를 탓한다. 하지만 아이는 다르다. 두렵다. 울컥한다. 세상이 갑자기 넓어진다.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내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를. 한참을 헤맸다. 해가 기울기 시작했다. 그때 저 멀리서 누군가 내 이름을 불렀다. 엄마였다. 엄마는 내가 학교에서 돌아오지 않자 동네를 뒤지고 있었다. 나는 그제야 울음을 터뜨렸다. 엄마 손을 꼭 잡았다. 따뜻했다.
요즘 나는 또다시 길을 잃고 있다. 어른이 된 지금, 잃어버린 건 골목길이 아니다. 삶의 방향이다. 하루하루가 비슷하다. 아침에 일어나 출근하고, 저녁에 돌아와 잠든다. 이게 전부다. 가끔 묻는다.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헤르만 헤세는 『데미안』에서 이렇게 말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나는 아직도 알 속에 있는 걸까. 깨뜨려야 할 세계를 두고 안전한 곳에 머물러 있는 건 아닐까.
어제 퇴근길에 한 아이를 봤다. 엄마 손을 꼭 잡고 걷는 아이. 그 아이 얼굴엔 안도감이 가득했다. 나도 한때 저랬지. 누군가 나를 찾아주고, 나를 데려가 주던 시절. 그땐 길을 잃어도 괜찮았다. 누군가 나를 찾고 있다는 걸 알았으니까.
지금은 어떤가. 누가 나를 찾고 있나. 아무도 없다면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 이런 생각을 하다 문득 깨달았다. 길을 잃는 건 나쁜 일이 아니다. 오히려 기회다. 새로운 길을 발견할 기회.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서 노인은 말한다. "인간은 파멸당할 수는 있어도 패배하지는 않는다." 노인은 거대한 청새치를 잡았지만 상어 떼에게 고기를 다 빼앗겼다. 돌아온 건 앙상한 뼈다귀뿐이었다. 그래도 노인은 패배하지 않았다. 바다로 나갔으니까. 싸웠으니까. 돌아왔으니까.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 길을 잃어도 괜찮다. 헤매도 괜찮다. 중요한 건 멈추지 않는 것이다. 계속 걷는 것이다. 누군가 나를 찾아줄 거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 것이다. 아니, 어쩌면 이제는 내가 나를 찾아야 할 때인지도 모른다.
오늘도 나는 길 위에 있다.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그래도 걷는다. 언젠가는 도착하겠지. 그곳이 어디든.
당신도 길을 잃었나요? 그렇다면 이렇게 해보세요:
매일 다른 길로 출근해 보세요. 익숙한 길 대신 낯선 골목으로.
지도를 보지 말고 걸어보세요. 한 시간만이라도 방향 감각에 맡겨보세요.
길을 잃었던 기억을 떠올려보세요. 그때 당신을 찾아준 사람은 누구였나요.
혼자 걷는 시간을 가지세요. 아무 생각 없이, 그저 발걸음만 옮기면서.
당신을 찾고 있는 사람에게 연락하세요. "나 여기 있어" 하고.
누군가 당신을 찾고 있습니다. 그게 누구든, 어디에 있든.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길을 잃어도 괜찮습니다. 다시 찾으면 됩니다. 중요한 건 멈추지 않는 것입니다.
계속 걸으세요. 언젠가는 도착합니다.
필사로 내면 다지기 오픈 톡방에서 함께 내면을 다져 나갔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