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긋지긋한 가난에서 탈출하려면
지천명의 나이에 이르러도 삶의 무게는 줄어들 줄 모른다. 특히 '가난의 굴레'란 것은 어찌나 질긴지, 거기서 벗어나 보려 발버둥 칠수록 제자리걸음 하는 기분마저 든다. 허나, 세상사 모든 이치가 그렇듯, 길은 언제나 밖이 아닌 '내 안'과 '내 주변'에 있다.
지척에 있는 이웃들을 세 그룹으로 나누어 가만히 들여다보니, 눈에 띄는 확연한 차이가 보였다. 그 차이는 돈의 액수 이전에, 삶을 대하는 아주 사소한 태도에서부터 비롯되고 있었다. 나는 이 미묘한 '태도의 진화'가 바로 우리가 염원하는 퀀텀점프(비약적인 도약)의 실체가 아닐까 생각하게 됐다.
첫 번째 사람들: 따뜻한 마음과 닻을 내리지 못한 꾸준함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서민층, 그들의 마음은 늦겨울의 아랫목처럼 참 따뜻하다. 서로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고, 작은 것이라도 나누려 애쓴다. 누구보다 이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간절함도 크다. 문제는 그 '간절함'이 '끈기'로 이어지지 못한다는 점에 있다.
새해 다짐처럼 감사를 기록하는 사소한 습관, 혹은 내일의 스케줄을 미리 적어두는 간단한 계획조차 그들에겐 버거운 숙제다. "이론적으로는 결코 어렵지 않은데" 쉽게 포기하고, 그저 '생각나는 대로' 하루를 살아낸다. 그러니 기록이 남지 않고, 성찰도 멈춘다. 가만 보면, 이들은 자신이 해 준 작은 호의에도 기어이 '생색'을 내거나 스스로를 '자랑'하여 타인의 인정을 구한다. 계산할 때면 서로 눈치를 보며 자꾸만 마음이 움츠러든다. 돈을 쓰는 순간마저도 '있음'이 아닌 '없음'에 집중, 마음의 가난에 갇혀버리는 것이다. 닻을 내릴 꾸준함이 없으니, 의지는 작은 파도에도 흔들리는 작은 조각배 신세다.
두 번째 사람들: 일단 시작하면, 꾸준함 그 자체가 되다
중산층은 달랐다. 그들은 대체로 변화를 시작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고 신중하지만, 일단 '시작' 버튼을 누르면 그 자체가 곧 꾸준함의 대명사가 된다. 그들에게 감사 기록과 스케줄 관리는 '해야 할 일'이 아니라 '시스템'이다. 기록된 삶을 들여다보며 어제의 나를 반성하고 오늘의 나를 다듬는 자기 성찰을 멈추지 않는다. 깨달음은 우연이 아닌 그 꾸준함의 부산물인 셈이다.
금전적인 관계에서도 이들의 합리성은 빛난다. 밥값처럼 큰 계산은 깔끔하게 '더치페이'를 원칙으로 하되, 누가 먼저 마음을 냈다면 기꺼이 그가 지불한다. 감정적인 소모 없이 합리적인 선에서 경제적 관계를 정리하는 '자기 관리'가 몸에 배어있다. 꾸준함으로 다져진 합리적인 삶의 태도가 바로 그들의 경제적 안정과 성장을 뒷받침하는 핵심이다.
세 번째 사람들: 삶 자체가 기록이고, 몸에 밴 감사와 나눔
가장 놀라웠던 것은 소위 상류층이라 불리는 세 번째 사람들의 모습이다. 그들에게 '감사'란 억지로 써 내려가야 하는 숙제가 아니다. 그것은 마치 호흡처럼, 그저 그들의 '삶 자체에 배어 있는' 태도다.
그들의 삶은 곧 기록이다. 굳이 애써 관리하려 하지 않아도, 이미 시스템화된 나눔과 베풂이 그들의 일상이다. 큰 금액을 사용하는 일에도 주저함이 없다. 그 돈이 나를 통해 또 다른 가치를 만들어낼 것을 알기에, 기쁜 마음으로 사용한다. 머리로 손익을 계산하지 않는다. '있음'을 만끽하고, 그 풍요로움을 자연스레 세상과 나누는 삶의 방식이 몸에 밴 것이다. 그들의 모습에서 나는 진정한 의미의 '마음의 해갈' 혹은 '영혼의 자유'를 보았다.
퀀텀점프는 습관의 진화다
이 세 그룹의 차이는 결국 '돈'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의 진화' 문제였다.
서민층이 '생각나는 대로'의 삶에서 벗어나 중산층처럼 '꾸준함을 시스템화'하는 것. 그리고 중산층이 그 시스템을 넘어 상류층처럼 '감사와 나눔이 몸에 밴 존재'로 진화하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가 꿈꾸는 퀀텀점프의 실체다.
결국, 퀀텀점프는 기록에서부터 시작된다. 내 삶에 '닻'을 내리고, '생각나는 대로'의 삶을 '기록된 대로'의 삶으로 바꾸는 것. 그 작은 변화가 비약적인 도약의 가장 강력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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