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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믿는 대로 펼쳐지는 세상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 / #21(D+371)

by 서강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힘

어제,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기적이 일어났어요. 방사선 치료 안 받아도 된대요." 수화기 너머 그녀의 목소리가 떨렸다. 기쁨인지 안도인지 모를 떨림. 그런데 나는 이상하게도 놀라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걱정한 적이 없었다. 그녀가 힘들어할까 염려는 했지만, 나쁜 결과가 올 거라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왜일까. 그녀를 알기 때문이었다. 검사 결과지에 적힌 숫자가 아니라, 그 사람 자체를 봤기 때문이었다. 얼마나 단단한 사람인지, 얼마나 많은 것을 이겨낸 사람인지. 병명으로는 보이지 않는 그녀의 생명력을 믿었다. 그리고 정말로, 믿음대로 이루어졌다.


우리가 놓치는 것들

아침에 만난 카페 직원의 피곤한 표정. 우리는 곧장 판단한다. '불친절하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어쩌면 아픈 아이를 돌보느라 밤샘을 했을 수도 있다. 표면은 진실의 아주 작은 조각만 보여줄 뿐이다.

짜증 섞인 말투 뒤에 숨은 피로를. 무뚝뚝한 태도 뒤에 감춰진 서툰 애정을. 차가운 거절 뒤에 놓인 자기 보호의 본능을. 우리는 너무 자주 놓친다.


믿음의 눈으로 본다는 것

《어린 왕자》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본질적인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마음으로 봐야만 잘 보여." 세상의 가장 중요한 것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사랑도, 믿음도, 희망도. 아픔도, 외로움도, 그리움도. 누군가의 진심도, 숨겨진 용기도, 보이지 않는 노력도. 우리에겐 다른 눈이 필요하다. 표면 너머를 볼 수 있는, 마음의 눈. 믿음의 눈. 그 눈으로 보면, 절망 속에서도 희망의 싹이 보인다. 차가운 말속에서도 따뜻한 마음이 느껴진다. 보잘것없어 보이는 하루 속에서도 기적 같은 순간들이 반짝인다.


믿음이 만드는 현실

신기한 건, 내가 상대를 믿는 눈으로 보면, 상대도 자신의 좋은 면을 보여주려 애쓴다는 것이다. 반대로 의심과 불신의 눈으로 보면, 상대는 방어적이 되고 움츠러든다.

불안한 마음으로 시작한 일은 어김없이 꼬인다. 반대로 '잘될 거야'라고 믿으며 시작한 일은 중간에 어려움이 와도 이상하게 풀린다. 결국 우리가 보는 세상은, 우리가 선택한 시선이 만들어낸 세상이다.


오늘, 다시 시작하는 연습

어제 그녀가 전해준 건 단순한 의학적 진단 결과가 아니었다. 그건 증명이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힘이, 정말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결국 믿음이란 건, 보이는 것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까지 함께 보는 능력이다. 현실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 현실 너머의 가능성을 보는 용기다. 그리고 그 용기는, 생각보다 우리 모두에게 이미 있다.

다만 깜빡하고 있을 뿐.

오늘, 당신은 무엇을 보았는가.

그리고 무엇을 보지 못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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