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 /#22(D+372)
내 안의 시간, 내 안의 성전
커피 한 잔을 들고 창가에 앉았다. 햇살이 창틀을 타고 들어와 내 손등 위에서 따스하게 춤을 춘다.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24시간. 오늘도 하루가 시작되었다.
"내 몸은 거룩한 성전이니라." 어릴 적 주일학교에서 배운 성경 구절이 문득 떠올랐다. 그때는 그저 외우기만 했던 말씀이 이제야 조금씩 이해가 된다. 몸을 깨끗이 하라는 것. 그것은 단순히 씻고 단정히 하라는 육체적 의미만은 아니었다. 마음도, 생각도 깨끗이 하라는 뜻이었다. 나쁜 생각조차 품지 말라는 것. 참 어려운 일이다.
요즘 나는 예전보다 나를 위해 시간을 쓴다. 책도 읽고, 좋아하는 음악도 듣고, 혼자만의 산책도 즐긴다. 나를 돌보는 시간의 비중이 확실히 늘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부족하다고 느낀다. 나를 위해서도 모자란 시간인데 말이다.
그런데 가끔, 아주 가끔 나는 그 소중한 시간을 엉뚱한 곳에 흘려보낸다. 진상 손님을 만난 날이면 그렇다.
퇴근 후에도, 저녁을 먹으면서도, 잠자리에 들기 전에도 그 사람 생각이 난다. '어떻게 저럴 수 있지?' '왜 저런 식으로 행동하는 걸까?' 판단하고, 비판하고, 평가한다. 내 소중한 감정과 시간을 그렇게 소비해 버린다.
그러다 문득 깨닫는다. 아, 나는 지금 내 성전을 더럽히고 있구나. 남을 향한 부정적인 생각으로, 쓸데없는 판단으로, 나 자신을 소진시키고 있구나. 이해하려 하지 않고 판단부터 한다. 공감하려 하지 않고 평가부터 한다. 그 사람에게도 나름의 사정이 있을 텐데, 그 사람도 오늘 힘든 하루를 보냈을 텐데. 나는 그저 내 기준으로만 세상을 바라본다.
필사를 통해 나의 가장 취약한 부분을 발견했다. 타인을 향한 판단과 비판. 그것이 결국 나 자신을 갉아먹고 있다는 것을. 내 안의 성전을 더럽히고 있다는 것을. 누군가 나를 힘들게 할 때, 한 발짝 물러서보기로. '저 사람은 왜 저럴까?' 대신 '저 사람도 오늘 힘든 일이 있었나 보다'라고 생각해 보기로. 판단 대신 이해를, 비판 대신 공감을 택해보기로.
완벽하게 실천하지 못할 것이다. 여전히 실수할 것이고, 다시 판단하고 비판할 것이다. 하지만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반은 이룬 셈이다. 내가 소중한 시간을 어디에 쓰고 있는지, 내 마음의 성전을 무엇으로 채우고 있는지 깨닫는 것. 그것이 변화의 시작이다.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24시간. 오늘 하루, 나는 이 시간을 나를 사랑하는 일에, 타인을 이해하는 일에, 내 안의 성전을 아름답게 가꾸는 일에 쓰고 싶다.
커피 잔을 비우고 자리에서 일어선다. 창밖으로 보이는 아침 하늘이 유난히 맑다. 오늘도 좋은 하루가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