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AI시대 생존법

[필사]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 /#23(D+373)

by 서강


AI시대 질문을 잘해야 한다는데 "어떻게 하면 좋은 질문을 할 수 있을까?" 잠시 창밖을 바라보았다. 겨울 나뭇가지 사이로 까치 한 마리가 날아오르고 있었다. 그 까치는 아마도 먹이를 찾기 위해 어디로 가야 할지 본능적으로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인간은 다르다. 우리에게는 본능 대신 질문이 있다.


질문을 잘하려면 먼저 나 자신과 대화해야 한다. 좋은 질문은 밖에서 오는 게 아니라 안에서 나온다. 요즘 사람들은 AI나 검색창에 묻는다. 그것도 좋다. 하지만 정작 자신에게는 묻지 않는다.

"내가 정말 알고 싶은 게 뭐지?"

"이 문제의 본질은 무엇일까?"

"이 사건이 왜 내게 일어났을까?"


신혼 때 일이다. 재래시장에서 고기를 사는데 상인이 저울을 속였다. 화가 났다. 억울했다. 당장 따지고 싶었지만 새댁이라 그럴 용기가 나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내가 정말 화가 난 건 몇 백 원의 손해 때문이 아니었다. 나를 만만하게 보았다는 것, 존중받지 못했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문제의 표면은 '저울 속임'이었지만, 본질은 '존엄의 상처'였다.



우리는 매일 수많은 문제와 마주한다. 직장에서, 가정에서, 관계에서. 그런데 이상하게도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엉뚱한 해결책을 찾아 헤맨다. 마치 열쇠를 집 안에서 잃어버렸는데 가로등 밑을 뒤지는 것처럼.


어느 철학자가 말했던가. "제대로 된 질문 하나가 천 개의 대답보다 낫다"라고. AI 시대 질문은 오롯이 우리의 몫이다. 그리고 좋은 질문은 인문학적 사색 없이는 나올 수 없다. 인문학이란 결국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학문이다.


나는 누구인가,

우리는 왜 사는가,

무엇이 옳은가.

이런 근본적인 질문들을 품고 살아온 사람은 눈이 다르다. 사건의 이면을 본다. 현상 너머의 본질을 파악한다.


나는 요즘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귀를 막고, 내면 소리를 듣는 연습 중이다.

"나는 지금 무엇이 힘든가?"

"이 문제의 실체는 무엇인가?"

"내가 정말 원하는 건 무엇인가?"


사색은 사치가 아니다. 생존의 기술이다.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보라. 산책을 하며 생각에 잠겨보라. 일기를 쓰며 자신과 대화해 보라.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안개가 걷히듯 문제의 본질이 보인다. 그리고 그 본질이 보이는 순간, 답은 저절로 따라온다.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당장의 분노에 휩싸이지 말고 한 발짝 물러서서 보라.

"이 사람은 왜 저런 행동을 했을까?"

"내가 진짜 상처받은 지점은 어디일까?"

"이 상황이 내게 가르쳐주는 교훈은 무엇일까?"

이렇게 질문하다 보면, 단순한 피해자도 가해자도 아닌, 삶을 이해하는 사람이 된다. 결국 우리가 찾아야 할 답은 모두 질문 속에 들어 있다.


세상이 아무리 빨리 변하고, AI가 아무리 똑똑해져도, 자기 자신과 대화하는 능력만은 어느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다. 그것이 우리가 끝까지 지켜야 할 인간다움이 아닐까.


창밖의 까치는 어느새 먹이를 물고 둥지로 돌아가고 있다. 나는 다시 책상 앞에 앉는다. 오늘도 나는 나 자신에게 묻는다. "오늘 나는 어떤 질문을 품고 살 것인가?"

KakaoTalk_20251121_083506241_01.jpg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 中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생애 처음 살아보는 오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