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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된 반복은 싫지만, 변화하는 일상은 계속할 수 있어

[필사]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 /#24(D+374)

by 서강


매일 다른 반복, 나만의 꾸준함을 찾다

나는 오랫동안 내가 "금세 싫증 내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2년에서 4년마다 이사를 하고, 아무리 값진 물건도 금방 질리고, 같은 식당을 세 번 이상 가지 못하는 나 자신이 때로는 부담스러웠다. "왜 나는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할까?" "왜 나는 오래 유지하지 못할까?" 하는 자책이 늘 따라다녔다. 어른들이 말씀하시던 방랑벽이 있는 걸까? 집중을 못하는 걸까? 뭔가 문제가 있는 걸까?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런데 최근 이상한 일이 생겼다. 점심시간마다 뭘 먹을까 고민하던 내가 딱 맞는 식당을 찾았고, 무려 식권까지 끊으며 열흘째 같은 곳을 가고 있다. 맛집도 세 번까지만 가는 내가 말이다.


처음엔 신기했다.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 봤다. 왜 질리지 않을까?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매일 메뉴가 바뀐다는 것. 틀은 같지만 내용은 늘 다르다는 것. 그게 1순위였다. 거기에 정성이 느껴지고, 맛도 있고, 가격도 착했다. 자세히 보아야 보인다. 오래 생각해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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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깨달았다. 나는 '반복' 자체를 싫어하는 게 아니었다. '정체'를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최근 계속 꾸준히 하고 있는 것들. 필사, 글쓰기, 독서. 이것들도 마찬가지였다. 필사 내용이 매일 다르고, 글쓰기 소재도 매일 다르고, 독서는 책마다 주는 메시지가 다르다. 일상이 반복되는 것 같지만 매일 다름을 느낀다.


나는 매일 다름 속에서 꾸준함을 만들어가는 사람이었다. 그걸 이제야 알았다.


이 발견이 나를 얼마나 자유롭게 했는지 모른다. 나는 끈기 없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저 나만의 방식으로 꾸준함을 만들어가는 사람이었다. 남들처럼 똑같은 틀 안에서 안정을 찾지 못한다고 해서 내가 틀린 건 아니었다.


나를 알아간다는 건 참 신기하면서도 행복한 일이다. 오랫동안 나를 탓하며 살았는데, 이제는 나를 이해하게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야 하는지 조금씩 선명해진다.



오늘도 나는 필사 노트를 펼친다. 어제와는 다른 문장을 만나고, 그것으로 나는 또 하루를 채운다. 이것이 나만의 꾸준함이다. 변화 속의 지속, 다름 속의 반복.


이제는 안다. 나는 매일 달라야 꾸준히 계속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것이 나쁘지 않다는 것을. 아니, 그것이 바로 나라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고, 자신이 무엇을 원하고 잘하는지 알아차릴 수 있으면 좋겠다. 남들의 기준이 아닌,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오늘도 내 필사 노트에는 새로운 문장이 채워지고 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KakaoTalk_20251122_091544786_01.jpg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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