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결실

네 가지 밭

by 서강

필사, 가장 느리지만 가장 빠른 길

성경을 펼치면 늘 생각한다. 예수님은 왜 그토록 비유를 좋아하셨을까. 직설적으로 말씀하시면 될 것을, 왜 씨 뿌리는 사람 이야기며, 겨자씨 이야기며, 포도원 품꾼 이야기를 돌고 돌아하셨을까. 어쩌면 그분은 아셨는지도 모른다. 단번에 이해되는 말은 단번에 잊힌다는 것을. 머리로만 받아들인 진리는 가슴까지 내려가지 못한다는 것을.


마태복음 13장에 나오는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처음 읽었을 때, 나는 그저 농사 이야기려니 했다. 길가 밭, 돌밭, 가시밭, 좋은 밭. 씨앗이 떨어진 땅에 따라 결실이 다르다는 평범한 이야기.


그런데 이 말씀을 필사하고 또 필사하면서, 문득 깨달았다. 이건 농사 이야기가 아니라 나 이야기였다. 씨는 늘 같았다. 내가 필사하는 문장들도 늘 같았다. 하지만 어떤 날은 그 문장이 길가에 떨어졌다. 바쁘다는 핑계로, 피곤하다는 이유로, 나는 그저 손만 움직였을 뿐 마음은 딴 곳에 있었다. 그러면 그 문장은 새에게 먹혔다. 흔적도 없이.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서강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서강(書江) 글이 흐르는 강처럼, 짧은 문장에서 깊은 마음을 건져올립니다. 마음 한 켠을 적시는 문장, 그 한 줄을 오늘도 써내려갑니다.

1,077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12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61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매거진의 이전글405일 동안, 나는 혼자 있는 법을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