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 451일]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36
아주 깊고 크게 숨을 들이마셔보라 몸이 가볍게 떨리는 동안 그대는 알게 될 것이다. 세상에 나 자신보다, 더 외로운 사람은 없다. - 헤르만 헤세
독서모임이 있는 날이었다. 새벽까지 드라마를 보느라 늦잠을 잤고,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약속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서둘러 집을 나섰지만 주차장에는 겹주차된 차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예전의 나였다면 나를 가차 없이 난도질했을 것이다.
"그럴 줄 알았다."
"게을러터졌다."
"너는 왜 맨날 이 모양이냐."
타인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면 절교를 선언했을 법한 거친 말들을, 나는 나 자신에게 아무렇지 않게 내뱉고 있었다. 주차장에 가로막힌 차를 보며 짜증을 냈던 건 사실 앞차 때문이 아니었다. 나를 용서하지 못하는 내 안의 날 선 가시들이 밖으로 튀어나온 것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잠시 멈춰 섰다. 그리고 나에게 건네는 말을 바꾸어 보았다.
"괜찮아. 조금 늦었지만 지금부터 차분히 가면 돼."
"오늘 더 조심해서 운전하라는 다정한 신호일지도 몰라."
비난의 말을 멈추고 위로의 언어를 선택하는 순간, 소란스러웠던 마음이 고요해졌다.
우리는 타인의 실수에는 "그럴 수 있지"라며 관대한 미소를 지으면서도, 자신의 작은 실수에는 "절대 안 돼"라며 채찍을 든다. 이것은 겸손이 아니라 학대다.
헤르만 헤세는 말한다. 세상에서 나 자신이 가장 외로운 사람이라고, 나를 외로움에서 꺼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내가 나에게 건네는 말의 온도다.
필사는 단순히 종이 위에 글자를 옮기는 노동이 아니다. 내 안의 거친 언어들을 정제된 성인의 언어로 교체하는 '내면의 언어 세탁'이다. 한 문장을 천천히 쓰다 보면, 나를 옥죄던 비난의 목소리가 잦아들고 그 자리에 다정한 위로가 차오른다.
가장 오래, 그리고 죽는 순간까지 함께 살아야 하는 사람은 결국 나 자신이다. 그런데 내 마음속에 박힌 날 선 가시들은 사실 타인이 심은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대하며 남긴 상처들인 경우가 많다.
언제까지 당신의 영혼을 비난의 방에 가두어 둘 것인가?
가장 오래 곁에 있을 단 한 사람, 당신 자신과 이제는 화해해야 한다.
필사를 시작한다는 것은 나에게 건네는 말을 바꾸겠다는 선언이다. 필사는 거창한 공부가 아니다. 삐뚤빼뚤한 글씨라도 괜찮다. 그저 "나도 이 좋은 문장처럼 귀한 대접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야"라고 스스로에게 속삭여주는 의식일 뿐이다.
혼자서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잊었다면, 함께 문장을 써 내려가며 그 근육을 키워보자. 펜 끝에서 흐르는 다정한 문장들이 당신의 상처 난 마음을 어루만져 줄 것이다.
당신은 타인에게 친절할 권리보다, 자신에게 다정할 의무가 먼저 있다.
오늘 밤, 잠들기 전 나를 가만히 안아주며 말해보자.
"오늘도 고생했어. 너는 충분히 잘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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