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 455일]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40
나는 남편을 떠나보낸 뒤에야 시간이 무서워졌다.
마지막 통화는 평범했다. 주말 부부로 지내던 터라 낮에 짧게 전화가 왔다.
"지금 뭐 해?"
"잠시 시간이 나서 전화했어."
"퇴근하고 또 전화할게."
그렇게 서로의 목소리를 확인하고 끊었다. 사랑한다는 말도, 고맙다는 말도, 미안하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어차피 저녁에 또 통화할 텐데, 주말에 만날 텐데, 그런 말들은 언제든 할 수 있을 텐데.
두 시간 뒤, 비보를 들었다.
그것이 마지막 통화가 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잠시 시간이 나서"라는 그 말이, "퇴근하고 또 전화할게"라는 그 약속이 마지막이 될 줄은.
엄마도 그렇게 떠나보냈다. 며칠 전 막내와 엄마 산소를 다녀왔다. 오고 가는 차 안에서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러던 중, 문득 막내와 보내는 이 시간이 너무 소중하게 다가왔다.
" 인간에게 효도할 시간을 주었으면 좋겠다. 100세까지 건강하게 살 수 있다면 충분히 효도하면서 살 수 있을 텐데. 효도할 나이에 이르면 효도받을 나이가 되고 만다. 인생은 참 짧은 것 같다."라고 말을 아끼지 않고 막내에게 건넸다.
좋은 곳에 갈 때마다, 좋은 음식을 먹을 때마다 할머니 생각이 난다고 한다. 어딜 다니시는 걸 좋아하셨는데, 지금처럼 운전을 할 수 있었다면 더 많이 모시고 다녔을 텐데. 요양원에 안 모셨더라면 더 행복하게 지내셨을 텐데. 그때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 생각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후회만 남는다.
나는 그 시간 동안 무얼 했을까. 누군가의 여행 사진에 '좋아요'를 누르고, 볼 일도 없는 뉴스를 스크롤하고 있었다. 남편이, 엄마가 이 세상을 떠나가고 있는 그 순간들에, 나는 남의 일상을 구경하며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그 사건 이후로 나는 매일 생각한다. 만약 그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나는 무슨 말을 할까. 왜 그때는 그 흔한 "사랑해"라는 말 한마디를 아꼈을까. 왜 "고마워"라고, "미안해"라고 말하지 못했을까. 왜 "잠시 시간이 나서"라는 그 소중한 순간을, 나는 그저 일상적인 안부로만 채웠을까.
두 번이나 주어진 기회를, 나는 두 번 다 놓쳤다. 시간은 무한하지 않다는 걸, 이별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는 걸, "또 전화할게"라는 약속이 지켜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나중에 효도하면 되지"라는 생각이 얼마나 헛된 것인지를, 나는 너무 늦게 배웠다.
무심코 흘려보내는 저녁 시간이, 미루고 또 미루는 안부 전화가, "다음에", "나중에", "언젠가"라며 차일피일 미뤄둔 표현들이 자꾸만 마음을 할퀸다.
더 이상 시간에 떠밀려 가고 싶지 않았다. 내가 주인이 되어 붙잡는 시간, 정성을 다해 머무는 시간을 갖고 싶었다. 그것이 내 필사의 시작이었다.
필사는 시간을 멈추는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묻는다. "바쁜 세상에 남의 글을 옮겨 적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요?" 하지만 필사는 글자를 복사하는 행위가 아니다. 거칠게 흐르는 시간의 강물에 '의식'이라는 닻을 내리는 작업이다.
우리는 시간을 아낀다는 명목으로 더 빨리 살아간다. 쇼츠영상마저도 2배속으로 보고, 요약본으로 책을 읽고, 효율을 위해 동시에 여러 일을 한다. 그런데 묘하게도 시간을 아끼려 할수록 시간은 더 빨리 사라진다. 하루가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도 남는 건 '바빴다'는 느낌뿐, 정작 무엇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필사는 그 반대편에 선다.
한 글자 한 글자 손으로 옮겨 적는 동안, 시간은 느려진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시간의 밀도가 달라진다. 10분이라는 똑같은 시간도 SNS를 보며 흘려보낼 때와 한 문장을 정성껏 옮겨 적을 때는 전혀 다른 무게를 갖는다.
헤르만 헤세는 말했다. "어느 꿈에도 집착하지 마라. 모든 꿈은 새 꿈으로 교체된다." 필사도 마찬가지다. 어제의 후회에 매몰되지 않고, 오늘 내 손끝을 지나가는 문장을 통해 새로운 나를 만나는 것이다.
필사를 한다고 해서 마음속 후회가 금세 사라지지는 않는다. 잡초를 뽑아내도 다음 날이면 다시 자라나듯, 우리의 후회는 반복된다. 하지만 매일 아침 펜을 드는 사람은 안다. 후회가 자라는 속도보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내 마음의 근육이 더 빨리 자라고 있다는 것을.
세월을 아끼는 가장 정중한 태도는 시간을 빨리 쓰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 정성을 다해 머무는 것이다.
마음 한구석이 허전하다면, 그것은 게으르거나 부족해서가 아니다. 시간이 너무 빠르게 흘러가고 있기 때문이다. 필사를 통해 그 흐름을 잠시 멈춰 세우길 바란다.
필사를 시작한다고 해서 갑자기 인생이 드라마틱하게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확실한 것 하나는, 하루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 당연하게 여겼던 아침 햇살이, "잠시 시간이 나서" 걸려온 그 전화 한 통이, 늘 곁에 있는 사람의 목소리가 비로소 '기적'으로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거창한 준비는 필요 없다. 마음에 머무는 문장 하나, 종이 한 장, 그리고 당신의 진심이면 충분하다. "나 같은 사람이 어떻게 필사를 해?"라는 의구심이 든다면, 그 마음조차 문장으로 옮겨보길 권한다. 완벽한 글씨체도, 깊은 문학적 이해도 필요 없다. 그저 지금 이 순간, 한 글자에 집중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필사는 '자기 계발'이 아니라 '자기 돌봄'이다. 무언가를 성취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오늘 하루를 정성껏 대하는 태도 자체가 목적임을 말해주고 싶다.
그렇게 필사를 경험한 사람들이 이렇게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나는 더 이상 시간에 쫓기지 않는다. 하루 10분이지만, 그 시간만큼은 온전히 내 것이다. 그리고 그 시간을 통해 배운다. 지금 곁에 있는 사람에게 '사랑해', '고마워', '미안해'라고 말하는 법을. '나중에 효도하면 되지'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함께하는 법을. 그것으로 충분하다."
함께 걷고 싶다. 각자의 속도로, 하지만 같은 방향으로. 세월을 아끼는 연습을 하고 싶다. 당신의 오늘이 정성 있는 하루가 되기를, 그리하여 훗날 오늘을 돌아보았을 때 단 한 점의 후회도 남지 않기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이 순간, 마음에 남는 문장 하나를 골라보자. 노트 한 장을 펼치고, 천천히 옮겨 적어보는 거다. 글씨가 예쁘지 않아도 괜찮다.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다.
그저 한 글자 한 글자, 손끝을 지나가는 그 감각에만 집중해 보자. 그 짧은 시간만큼은, 당신의 시간이 온전히 당신의 것이 될 것이다.
그리고 오늘, 지금 곁에 있는 사람에게 말해보자. "사랑해", "고마워", "미안해"라고. 전화 한 통을 걸어보자. "잠시 시간이 나서"가 아니라 "당신이 보고 싶어서"라고. 부모님께 말해보자. "나중에 효도할게"가 아니라 "오늘 맛있는 거 사드릴게요", "이번 주말에 모시고 나갈게요"라고.
내일이 아니라 오늘, "나중에"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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