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 460일]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45
말은 정교하지 않아서 생각을 분명하게 표현하기 힘들다. 입에서 나오는 순간 말은 언제나 조금씩 달라진다. 조금 비틀려서 어리석게 변한다. -헤르만 헤세
명절 아침, 집집마다 풍기는 고소한 전 냄새 사이로 서늘한 긴장이 흐른다. 오랜만에 마주 앉은 식탁. 정겨운 덕담이 오가야 할 자리에서 누군가는 무거운 바위를 들어 올린다.
"결혼은 언제 하니?"
"취직은 했니?"
"연봉은 얼마나 받니?"
"공부는 잘하니?"
"애는 언제 낳을 거니?"
사랑과 관심이라는 포장지로 정성스럽게 싸여 있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상대의 삶을 채근하는 뾰족한 칼날이 숨어 있다. 어른들은 그것이 '인생 선배의 조언'이라 믿으며 쏟아내지만, 듣는 청년들에게 그 말은 가슴을 짓누르는 거대한 바위가 되어 돌아온다. 진심은 그 바위 밑에 깔려 신음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내 말이 정답인 양 착각하며 살았다. 위로한답시고 수화기를 붙잡았지만, 정작 내 입에서 나간 말들은 상대를 향한 지시와 강요였다.
"그건 네가 잘못 생각한 거야",
"이렇게 해야지" 하며 내 생각을 주입하기에 바빴다.
친구의 젖은 마음을 헤아리기보다 내 식견을 자랑하는 설교를 늘어놓은 셈이다. 그 부끄러운 기억이 명절의 풍경과 겹쳐 마음이 아려온다.
말에도 '명품'이 있다. 명품은 화려한 수식어로 치장된 것이 아니라, 상대의 마음을 가장 편안하게 감싸주는 옷과 같다. 명절에 우리가 건네야 할 언어는 평가나 비교가 아닌, 오직 '존재에 대한 긍정'이어야 한다.
이번 설날, 우리가 지켜야 할 세 가지 언어의 온도를 제안해 본다.
내려놓기: "너는 왜"로 시작하는 훈수를 버리고, "너는 요즘 어떠니"라는 물음표를 놓는다.
머무르기: 궁금함이 턱 끝까지 차오를 때, 그 말을 입안에 잠시 가두고 상대의 표정을 살핀다.
닿기: 상대가 정말 듣고 싶어 하는 말, "애썼다", "너는 지금 그대로도 충분하다"라는 쉬운 우리말을 고른다.
어차피 오해를 살 바에는 침묵하는 것이 낫지 않으냐고 묻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침묵보다 위대한 것은 '다듬어진 말'이다. 한 알의 밀알이 썩어 큰 나무를 이루듯, 우리가 정성껏 빚은 한마디는 누군가의 지친 영혼을 다시 살려내는 기적을 만든다.
헤세의 말처럼 인간의 말은 본디 정교하지 못하다. 그러기에 우리는 말을 내뱉기 전, 장인이 명작을 빚듯 정성껏 다듬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사람의 향기가 나는 진정한 명품의 언어다. 위로와 상처를 가르는 것은 말의 속도가 아니라, 상대에게 얼마나 가까이 다가갔느냐는 마음의 거리다.
지금까지의 명절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쏟아내는 시간이었다면, 이번 설날은 상대가 간절히 듣고 싶어 했던 말을 건네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서툴면 서툰 대로, 모자라면 모자란 대로 진심을 빚어보자. 당신이 건넨 그 따뜻한 말 한마디가, 바위처럼 무거운 삶을 견디는 누군가에게는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밀알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