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 461일]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46
만약 당신이 어떤 사람을 싫어한다면, 당신은 그 사람 내면에 있는 당신과 닮은 일부를 싫어하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일부가 아닌 것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 ― 헤르만 헤세
아침에 눈을 뜨면
세상이 먼저 나를 마주한다.
그중에서도
사람이 가장 선명하다.
모든 사람이
마음에 들 수는 없다.
그럴 때가 있다.
상대가 특별히 잘못한 것도 아닌데
이유 없이
마음이 불편해질 때.
그 순간
나는 질문을 바꿔본다.
'왜 저 사람이 싫을까?'가 아니라
'내 안의 무엇이
저 장면에 반응했을까'라고.
우리는 흔히
타인을 내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외부의 존재라고 착각한다.
하지만 헤세의 말처럼,
인간은 자신과 무관한 것에는
결코 격렬한 감정을 소비하지 않는다.
내가 누군가의 오만함을
견디지 못한다면
내 안에 인정받고 싶은
뒤틀린 욕망이 숨어 있는 것이고,
누군가의 나태함이
유독 거슬린다면
그것은 내가 스스로에게
허락하지 못한 휴식에 대한
질투일지도 모른다.
보이는 것이 곧 나다.
내 곁의 사람들,
내가 유독 거슬려하는 태도들,
반복해서 눈에 밟히는 모습들.
그 안에는
내가 아직
직면하지 못한
나의 일부가 숨어 있다.
내가 타인에게 던지는
비난의 화살은
사실 부메랑이 되어
내 등을 겨누고 있는 셈이다.
상대는 거울이다.
흠집을 내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
나를 비추기 위해
거기 서 있다.
거울 속의 내 모습이
보기 싫다고
거울을 깨뜨려봐야
내 얼굴의 얼룩은
지워지지 않는다.
오히려 파편에
손을 다칠 뿐이다.
그래서
미워하기보다
들여다본다.
밀어내기보다
돌아본다.
상대를 바꾸려 애쓸수록
마음은 소모되고,
나를 관찰하기 시작하면
삶은 조금씩
정돈된다.
오늘 당신의 마음바닥을
긁어놓는 그 사람이 있다면,
잠시 멈춰 서서
스스로에게 물어보길 권한다.
"나는 지금
저 사람의 무엇을 빌려
나를 미워하고 있는가?"
그 질문에 답할 수 있을 때,
비로소 타인은
지옥이 아니라
나를 완성하는
가장 친절한 스승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