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책임은 '태어난 것'이 아니라 '쓰이는 것'

[필사 466일]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51

by 서강
인생의 의미가 있고 없고는 내 책임의 범위에서 벗어난 것이다. 하지만 단 한 번만 주어지는 나의 인생에서 무엇을 하며 살지는 전적으로 나의 책임이다. -헤르만 헤세


던져진 생(生) 위에서 당신이 쥐어야 할 유일한 핸들


얼마 전, 서재의 먼지를 털어내다 오래전 일기장을 발견했다.


그 안에는 '내 인생의 의미는 무엇일까'라는 질문이 수없이 반복되어 있었다. 그때의 나는 마치 보물 찾기를 하듯, 세상 어딘가에 숨겨진 정답을 찾아내야만 내 삶이 비로소 시작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답이 없는 질문을 붙잡고 있을수록 정작 오늘 내가 해야 할 일들은 손가락 사이로 모래알처럼 빠져나갔다.


우리는 종종 착각한다. 인생의 의미가 규명되어야만 비로소 가치 있게 살 수 있다고 말이다. 하지만 헤르만 헤세는 단호하게 선을 긋는다. 인생에 의미가 있느냐 없느냐는 우리가 결정할 영역이 아니라고. 그것은 신의 영역이거나, 혹은 우연의 산물일 뿐이다. 우리가 책임져야 할 것은 '왜 태어났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살 것인가'에 있다.




의미를 찾느라 인생을 허비하는 것만큼 허망한 일은 없다.


그것은 마치 요리법을 연구하느라 정작 눈앞의 식재료를 다 썩히는 요리사와 같다. 삶은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사용하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 내 귀한 에너지를 어디에 쏟고 있는가?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느라 나를 방치하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은 사실 '의미 없는 삶'이 아니다. 진짜 두려움은 따로 있다. 내가 선택하고 책임져야 한다는 사실, 그 무게감이다. 의미를 묻는 질문 뒤에는 언제나 이 회피가 숨어 있다. '아직 의미를 못 찾았으니까, 나는 아직 시작하지 않아도 돼.' 그 말은 얼마나 달콤한 면죄부인가.




단 한 번뿐인 이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지만, 그 시간을 채우는 밀도는 전적으로 개인의 책임이다.


남들이 세워놓은 이정표를 따라 걷기에는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이 너무도 짧다. 반대로, 오직 나답게만 살겠다고 고집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기에는 지금 이 찰나가 너무나 눈부시다. 태어난 것은 내 선택이 아니었다. 하지만 오늘 하루를 어떤 마음으로 살아낼지는 오롯이 나의 것이다. 그 경계를 분명히 아는 사람만이 비로소 자기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다.


헤세가 우리에게 건네는 말은 위로가 아니라 소환장이다. '의미는 내가 줄 수 없으니, 너는 이제 변명을 내려놓아라. 그리고 살아라.'




결국 인문학적 삶이란 흩어진 관심을 나에게로 회수하는 과정이다.


거창한 존재의 이유를 묻기보다, 오늘 내 앞에 놓인 일들에 나의 온전한 진심을 담는 것. 그것이 우리가 유일하게 책임질 수 있는 삶의 태도다. 쓰이지 않은 책은 아무리 훌륭한 제목을 달아도 책이 아니듯, 살아지지 않은 하루는 아무리 거룩한 의미를 붙여도 삶이 아니다.


이제 고개를 들어 주변을 보라. 그리고 당신의 시간을 어디에 둘지 스스로 결정하라.


당신이 머무는 그곳이 곧 당신의 인생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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