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 465일]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50
"나는 나의 제자가 되어서 스스로에게 배울 것이다." ― 헤르만 헤세
어느 날 문득, 거울 앞에 서서 나 자신에게 물었다.
나는 내가 존경할 만한 사람인가.
이 질문은 꽤 아프다. 타인에게는 한없이 관대하면서 정작 나 자신에게는 무질서하게 방치하며 살아온 세월이 한꺼번에 스쳐 지나가기 때문이다. 혹은 그 반대로, 스스로를 너무 가혹하게 몰아붙이며 단 한 번도 내 편이 되어주지 못했던 날들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어느 쪽이든, 그 질문 앞에서 우리는 잠시 말을 잃는다.
나는 그 침묵 속에서 헤르만 헤세의 문장을 다시 꺼냈다.
나는 나의 제자가 되겠다고.
처음에는 그냥 좋은 말처럼 읽혔다. 그런데 오래 들여다볼수록, 이 문장은 위로가 아니라 선언이었다. 밖에서 스승을 찾지 못했다면, 내 안에 스승을 세우라는 것. 누구도 나를 제대로 이끌어주지 않았다면, 이제는 내가 나를 이끌어야 한다는 것. 그 말이 묵직하게 가슴에 내려앉았다.
조선 시대, 세자에게는 당대 최고의 학자들이 스승으로 붙었다. 그들의 역할은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었다. 세자의 태도를 빚는 조각가였다. 말하는 법, 침묵하는 법, 분노를 다스리는 법, 권력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중심을 세우는 법. 그것을 가르쳤다.
김장하 선생님 같은 어른을 보며 우리가 감동하는 이유도 그것이다. 그분이 남긴 유려한 문장 때문이 아니다. 말해야 할 때 침묵하고, 써야 할 때 조용히 지갑을 열고, 삶의 궤적 자체로 증명해 낸 그 절제된 무게 때문이다. 그런 어른 앞에서는 저절로 자세가 달라진다. 가르치지 않아도 가르쳐지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스승을 현실에서 만나기란, 기적에 가깝다.
그래서 헤세는 고독하게 선언한 것이다. 밖에서 찾지 못했다면, 안에서 만들라고.
스승이란 지위가 아니다. 자제력의 증거다.
어른이 사라지고 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어른의 자리는 있는데 어른이 없다. 나이는 먹었고, 직함은 생겼고, 머리는 희어졌는데, 그 안에 어른다움이 없다. 껍데기만 남은 어른들이 어른의 자리를 채우고 있는 시대. 우리는 지금 그 시대를 살고 있다.
진짜 어른은 말을 아낀다. 함부로 말하지 않는다. 아는 것도 때로는 삼킨다. 누군가 틀렸을 때 즉각 교정하려 들지 않고, 그 사람이 스스로 깨달을 수 있는 시간을 준다. 감정이 올라올 때 그 감정을 바로 뱉지 않고, 한 번 더 걸러낸다. 혀 끝에서 맴도는 날카로운 말을 삼키는 것, 훈계 대신 행동으로 먼저 보여주는 것, 상대의 영혼에 닿을 보석 같은 단어 하나를 고르기 위해 나머지 말들을 기꺼이 버리는 것. 그 자제력이 쌓이면 품격이 되고, 그 품격이 쌓이면 비로소 어른이 된다.
그것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다. 오랜 시간 스스로를 깎고 다듬은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자기 통제의 결과물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보는 어른의 모습은 어떤가. 더 많이 말하고, 더 크게 자기를 드러내고, 더 빨리 판단을 내린다.
젊은 세대에게 가르치려 들고, 자기 시대의 성공 방식을 정답처럼 강요한다. 상처를 받으면 어른답게 소화하는 것이 아니라 지위와 나이로 되갚는다. 틀렸을 때 인정하지 않고, 약할 때 약하다고 말하지 못한다. 그것은 어른이 아니다. 나이만 먹은 아이다.
한 번만 솔직하게 생각해 보자.
지금 당신 곁에, 진짜 어른이 있는가.
나이가 많은 사람 말고. 직함이 높은 사람 말고. 말이 많고 경험담이 풍부한 사람 말고. 그 사람 곁에 있으면 저절로 자세가 달라지는 그런 어른. 말보다 침묵이 더 무겁고, 행동이 말을 앞서는 그런 사람. 쉽게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면, 그것이 이미 하나의 답이다.
어른이 사라진 시대의 가장 큰 비극은 따로 있다. 롤모델이 없다는 것이다. 어떻게 나이 들어야 하는지, 어떻게 지면서도 품위를 잃지 않는지, 어떻게 가진 것을 나누면서도 더 단단해지는지, 그것을 몸으로 보여주는 사람이 없다. 그래서 젊은 세대는 어른을 경외하지 않는다. 경외할 어른을 만나본 적이 없으니까. 그리고 그것은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가.
나는 누군가에게 어른으로 보이는가, 아니면 그냥 나이 든 사람으로 보이는가. 나는 말을 아끼고 있는가, 아니면 아는 것을 다 꺼내 보이고 싶어 안달하는가. 나는 행동으로 먼저 보여주는가, 아니면 말로 먼저 설명하려 드는가. 나는 감정을 다스리는가, 아니면 감정에 다스려지는가.
솔직하게 들여다보면,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우리는 모두 어른 흉내를 내고 있다.
완전히 준비된 채로 어른이 된 사람은 없다. 누구나 흉내에서 시작한다. 문제는 흉내인 줄 모르는 것이고, 흉내를 멈추지 않는 것이다. 진짜 어른은 자신이 여전히 부족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다. 내 안의 스승이 엄격할 때, 비로소 내 안의 제자는 올바른 길을 걷기 시작한다.
나라는 지옥은 스스로를 방치하거나 스스로를 학대할 때 만들어진다.
나라는 천국은 내가 나의 가장 좋은 스승이 되는 순간 시작된다.
인생의 후반전은 더 이상 누군가의 가르침에 기대는 시기가 아니다. 이제는 내가 나를 가르쳐야 한다. 방황하는 자신을 따뜻하게 다독이면서도, 무너지려 할 때 단호하게 잡아줄 수 있는 그 사람. 그 스승이 바로 나여야 한다.
부끄럽지 않은 어른이 된다는 것은, 거창한 일이 아니다. 매일 아침 나 자신이라는 제자에게 성실한 뒷모습을 보여주는 일이다. 오늘 하루, 말을 한 번 더 아끼고, 감정을 한 번 더 다스리고, 행동을 한 번 더 앞세우는 것. 그 작고 조용한 훈련이 쌓여, 언젠가 당신의 삶을 가장 품격 있는 문장으로 완성해 줄 것이다.
참된 스승을 외부에서 찾지 못했다면, 이제는 내 안에서 만들어야 한다. 헤세가 말한 것처럼, 나의 제자가 되어 스스로에게 배우는 것. 그것이 어른이 사라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남겨진 가장 고독하고, 가장 품격 있는 선택인지도 모른다.
오늘 당신 곁에 진짜 어른이 없다면, 그 자리를 채울 사람은 결국 당신 자신이다.
흉내에서 시작해도 괜찮다. 다만, 평생 흉내로 끝나지는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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