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곡선은 천천히, 그러나 반드시 올라간다

[필사 478일]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63

by 서강

필사를 하다 보면 자연스레 펜을 오래 쥐게 된다.

나는 0.5의 가는 심을 좋아한다. 힘을 주지 않아도 종이 위를 미끄러지듯 흘러가고, 생각보다 먼저 문장이 태어나는 그런 펜. 처음엔 그게 신기했다. 내가 쓰는 건지, 펜이 쓰는 건지 모를 만큼 손이 가벼워지는 순간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억지로 빠르게 쓰려다 잉크가 번진 적이 있었다. 종이가 찢길 것처럼 힘을 줬더니 오히려 글자가 흐트러졌다. 그 번진 잉크 자국을 바라보다가 문득 떠올랐다. 아, 내 지난 몇 달이 꼭 이랬구나.


헤르만 헤세는 말했다.

"내 삶의 곡선이 서서히 올라가고 있다. 콧노래가 다시 흘러나오고, 살아 있다는 사실이 느껴진다. 위기를 극복한 것이다. 앞으로도 나는 위기를 견뎌낼 것이다."


이 문장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서서히'라는 단어였다.

한 번에 치솟는 게 아니라, 서서히. 극적인 반전이 아니라, 조용한 회복. 헤세는 위기를 이겨냈다고 말하면서도 결코 뜨겁게 외치지 않는다. 그저 콧노래가 흘러나온다고, 살아 있다는 게 느껴진다고 담담하게 적는다.

그 담담함이 오히려 더 깊이 박혔다.


어쩌면 우리의 하루도 이와 비슷한지 모른다.

억지로 밀어붙이면 잉크가 번지고, 힘을 조금 빼면 글자는 스스로 길을 찾는다. 사람도, 펜도 각자의 개성이 있고, 그 중심이 잡힐 때 비로소 흐름이 생긴다.


삶이 술술 풀리는 날은 대단한 일이 있어서가 아니다. 내 마음의 중심이 조용히 제자리에 돌아왔기 때문이다.

위기의 한복판에 있을 때, 우리는 종종 착각한다. 이 고통이 영원할 거라고. 이 내리막이 끝이 없을 거라고. 그래서 더 세게 쥐고, 더 빠르게 달리려 하고, 더 큰 힘으로 밀어붙인다. 하지만 그럴수록 잉크는 번지고, 손목은 뻐근해지고, 글자는 더 엉망이 된다.


헤세가 말한 '서서히'는 포기가 아니다. 그것은 삶의 리듬을 다시 믿기로 한 결단이다.

곡선은 원래 직선이 아니다.

오르고 내리고, 휘고 꺾이는 것이 곡선의 본래 모습이다. 그러니 지금 내려가고 있다면, 그건 곡선이 제 역할을 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문제는 방향이 아니라 중심이다. 중심만 잃지 않으면, 곡선은 반드시 다시 올라간다.


콧노래는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어느 날 문득, 입에서 흘러나오는 것이다. 그 콧노래가 나오는 날, 그게 바로 삶의 곡선이 방향을 바꾸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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