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 485일]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70
어느 날 문득 주변을 둘러보니, 나는 아주 안온하고도 단단한 성벽 안에 갇혀 있었다.
그 벽의 이름은 '익숙함'이었고, 문고리에는 '습관'이라는 이름의 녹슨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다. 성 안은 따뜻하고 안전했다. 바람 한 점 통하지 않으니 흔들릴 일도 없었다. 하지만 비극은 거기서 시작된다. 안전하다는 것은 곧,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오늘 아침, 작은 소동이 하나 있었다.
정성껏 적어 내려간 필사 문구를 저장하려는데 자꾸만 오류가 났다. 몇 번이고 새로고침을 누르고 재시도하며 애를 태웠다. 1분, 5분... 시간은 속절없이 흘렀다. 그러다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 하나.
"그냥 화면을 캡처하면 되잖아."
허탈했다. 캡처라는 아주 단순한 우회로가 있었음에도, 나는 '저장 버튼'이라는 단 하나의 문에 매달려 온몸으로 두드리고 있었다. 이미 허비한 시간이 아까워 억울한 마음까지 들었다.
하지만 이내 깨달았다.
내가 그토록 고집했던 '저장'이라는 방식 자체가, 나를 가두고 있던 견고한 성이었음을.
헤르만 헤세는 말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고. 태어나려는 자는 반드시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고. 우리는 흔히 그 '세계'가 거창한 억압이나 거대한 시련일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인문학적 시선으로 들여다보면, 그 세계는 훨씬 더 미세하고 일상적인 곳에 있다.
오늘 아침, 저장 버튼을 반복해서 누르던 그 작은 손가락처럼. 우리는 매일 아주 작은 알 안에 갇혀 산다.
"이 방법밖에 없어."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
"해봤는데 안 되잖아."
우리가 무심코 내뱉는 이 말들이 바로, 우리를 가두는 알껍데기다. 캡처 한 번이면 끝날 일을 저장 버튼에 매달려 시간을 버렸던 나처럼, 우리는 어쩌면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갈 수 있는 수많은 방법을 눈앞에 두고도 스스로 만든 고정관념의 자물쇠만 만지작거리고 있는지 모른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 뒤에야 하늘을 본다.
알 안에 있을 때는 하늘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다. 우리도 그렇다. 성벽 안에 있으면, 성벽 너머의 세계가 얼마나 넓은지 가늠조차 할 수 없다. 지금 당신을 답답하게 만드는 그 문제가, 어쩌면 외부의 시련이 아닐 수도 있다. 당신이 쌓아 올린 '익숙함'이라는 성벽이 너무 견고해져서, 당신 자신의 시야를 가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성벽을 허무는 것은 대단한 파괴가 아니다.
"꼭 이래야만 할까?" 하는 작은 의문 하나를 던지는 것. 내가 옳다고 믿었던 방식을 잠시 내려놓는 것. 그 사소한 틈새 하나가 결국 견고한 성을 무너뜨리고, 우리를 진짜 세상으로 데려다준다.
견고한 성은 한 번에 무너지지 않는다. 하지만 매일 조금씩, 작은 틈새 사이로 언젠가 반드시 빛이 스며들어 오는 날이 온다.
오늘, 캡처 한 번으로 해결됐다.
아무것도 아닌 일이었다. 그런데 그 작은 깨달음이 마음 한구석을 오래 건드렸다. 내가 갇혀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 그것이 이미 성벽에 첫 번째 틈을 내는 일이라는 것을.
오늘 그 작은 균열, 충분히 가치 있었다.
당신의 일상을 가두고 있는 아주 작은 알껍데기 하나를 오늘 발견해 보길 바란다.
그것을 깨뜨리는 순간, 당신은 비로소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먼 곳까지 날아오를 준비를 마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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