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 489일]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74
오늘 아침,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헤세를 만났다.
"그는 진심으로 사랑했으며, 그로 인하여 자신을 발견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사랑을 하면서 오히려 자신을 잃어버린다." 펜을 내려놓고 한참 그 문장 앞에 앉아 있었다.
주말에 동생들과 산책로를 걸었다.
길가에 쑥이 올라와 있었다. 고개를 쑥 내민 쑥을 보면서 친구가 생각났다. 봄만 되면 쑥을 캐러다니는 친구, 쑥떡, 쑥국해 먹느라고 손이 바쁘다.
나는 무릎이 안 좋아 쪼그려 앉을 수가 없다.
그냥 서서 바라볼 수밖에.
그런데 그 순간, 이상하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캘 수 없어서, 비로소 볼 수 있었다.
이른 봄 햇살을 받아 조용히 빛나고 있는 쑥을. 차가운 땅을 뚫고 올라오는 데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을지를. 쑥 입장에서는 참 슬프겠다는 마음이 든다.
쑥이라는 존재로 봐주는 사람이 없으니까.
늘 쑥떡이나, 쑥국으로 변신해야 하니까.
사랑도 그렇다.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사실은 그 사람이 내게 주는 것을 사랑할 때가 있다. 위로가 되는 사람, 나를 웃게 해주는 사람. 쑥떡을 원하면서 쑥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처럼.
헤세가 다시 속삭인다.
진심으로 사랑한 사람은 자신을 발견한다고. 하지만 대부분은 자신을 잃어버린다고.
어쩌면 그 차이는 여기서 오는 게 아닐까.
상대를 쑥떡으로 보지 않는 것. 그냥 지금 이 자리에 살아 있는 존재로 바라보는 것. 그리고 나 자신도, 누군가의 쑥떡이 되려 하지 않는 것.
캘 수 없어서 그냥 바라봤던 그 쑥이, 오늘 가장 아름다웠다.
사랑도 그럴 것이다.
소유하려는 손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그 사람이 보인다.
별은 하늘에서 빛나지 않는다.
자신의 세계에서 불탈 때 비로소 빛난다.
쑥도, 사랑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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