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만 먹은 꼰대가 되지 않으려면

by 서강

[필사 511일] 있다고 다 보여주지 말고 안다고 다 말하지 마라 /#20


현관문 앞에서 택배 기사님께 건넨 짧은 목례 하나. 식당에서 종업원의 눈을 보며 전한 "고맙습니다" 한마디. 우리는 이것을 친절이라 부르지만, 셰익스피어의 눈으로 보면 이것은 단순한 매너가 아니다. 하나의 '환영'이다.


모든 만남에는 마땅히 갖춰야 할 격식이 있고, 그 격식의 뿌리는 분별력에 있다.


어른다운 어른이 귀한 시대다. 나이가 계급장이 되고,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풍경에 익숙해진 탓일까. 어느 날 문득 거울 앞에서 멈췄다. 오늘 나는 몇 번이나 진심으로 인사를 건넸을까. 몇 번이나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들었을까. 몇 번이나 입을 다물었어야 했는데 열었을까.


진짜 품격은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와, 내가 머물 자리를 정확히 아는 지혜에서 나온다. 앉을자리와 누울 자리를 아는 것. 지갑을 열 자리와 닫을 자리를 아는 것. 무엇보다, 입을 열 자리와 다물 자리를 아는 것.


이 힘은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경험은 반복을 만들고, 반복은 습관을 만들지만, 습관이 곧 품격이 되지는 않는다. 생각의 깊이가 함께 자라야 한다. 매일 문장을 필사하며 나를 깎아내고, 책 속의 삶을 간접 경험하며 사리의 밝음을 얻어야 한다. 책은 내가 살지 못한 삶을 살게 해 주고, 내가 겪지 못한 실수를 미리 겪게 해 준다.


어른 김장하 선생을 생각한다. 평생 번 돈을 조용히 내어놓고, 이름을 내세우지 않은 사람. 그분의 예의는 거창한 말이 아니라 낮은 자세에 있다.


품격은 선언하는 것이 아니다. 손님을 맞을 때 한 발 앞서 문을 여는 것. 대화할 때 내 말보다 상대 말을 한 박자 더 듣는 것. 칭찬받을 자리에서 결과 대신 함께한 사람을 먼저 말하는 것.


예절이란 타인을 향한 배려인 동시에, 나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다. 품격은 남이 올려주는 것이 아니다. 나의 분별 있는 행동 끝에 스스로 차오르는 빛이다.


때와 장소에 맞는 옷을 입듯, 마음에도 분별력이라는 의관을 정제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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