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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세 시대

그냥 있다가는 큰일 날 시대다

by 서강


치매를 앓는 할머니를 돌보는 손주들의 유튜브 영상에서 마주친 한 장면. 젊은 시절 꽃처럼 고왔던 모습은 어디로 갔을까. 피골이 상접한 할머니의 눈빛에서 삶의 무상함을 읽는다. 백세시대라 외치지만, 과연 언제까지 품위 있게 살아갈 수 있을까. 찰나와 같은 인생에서 우리는 무엇을 남길 수 있을까. 나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 나온다.




요즘은 신기한 앱들도 많아졌다. 젊어지는 모습, 늙어가는 모습을 미리 보여준다. 마치 시간 여행자처럼 미래와 과거를 오간다. 그런데 이상하다. 거울은 날 속이고 있다. 사진 속 내 모습은 거울과 다르다. 문득 엄마 생각이 난다. 사진 찍기를 그토록 싫어하시던 엄마. 이제야 그 마음을 이해할 것 같다.




우리 엄마도 한때는 앳된 소녀였다. 누군가의 딸이었고, 꿈 많은 소녀였다. 세월은 그런 엄마를 어느새 할머니로 만들어버렸다. 나도 지금 그 길을 걷고 있다. 문득 빛바랜 앨범을 펼쳐본다. 교복 치마를 휘날리며 중학교 졸업사진을 찍던 열여섯 살의 나는 그곳에 그대로 있다. 부모님의 사랑스러운 딸이었고, 첫사랑의 설렘으로 볼이 붉어지던 스무 살의 내가 미소 짓고 있다.




사진 한 장 한 장에 시간이 쌓인다.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고 새 출발을 하던 순간, 첫 아이를 품에 안던 그날, 둘째, 셋째 아이까지, 그때는 힘들었는데 지금은 그때가 그립다. 마치 달력 한 장을 넘기듯 스쳐간 시간들이, 어느새 내 인생이 되어있다.



거울 속 주름진 눈가를 매만지며 생각한다.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나를 상상이나 했을까. 그리고 지금의 나는 또 어떤 모습으로 흘러가고 있을까. 인생이란 무엇일까. 끝없이 흐르는 강물처럼 우리는 모두 같은 방향으로 흘러간다.




치매에 걸린 어느 날, 혹시라도 맑은 정신이 돌아와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면... 가족도 알아보지 못하고, 밥 숟가락도 제대로 들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을. 용변을 가리지 못하는 모습, 그토록 소중히 여기던 내 존엄성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린 모습을. 그 순간의 참담함과 슬픔은 어떨까.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 한번 깨닫는다. 오늘의 내 나이가 미래의 나에겐 그토록 그리운 청춘이리라.



봄날의 꽃처럼 아름답게 피었다가, 가을 낙엽처럼 조용히 떠나는 것. 어쩌면 그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삶의 마무리가 아닐까. 오늘도 거울 앞에 서서, 시간이라는 강물 위에 떠가는 내 모습을 바라본다. 무상한 세월 속에서도 우리는 각자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채 흘러가고 있다.



수많은 물방울이 모여 강을 이루듯, 우리의 하루하루는 인생이란 큰 흐름을 만든다. 그 속에서 우리는 때로는 웃고, 때로는 울며 살아간다. 하지만 이 모든 순간이 우리의 이야기가 되어 끝없이 흘러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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