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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극의 한 장면으로 즐기기로 했습니다.

by 서강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진정한 소통에 할애하고 있을까? 한파가 몰아치던 금요일 저녁, 오랜만의 동창 모임을 통해 '진정한 소통'의 의미를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게 됐다.


얼마 전, 초등학교 동창 친구 아들이 결혼식을 올렸다. 인사도 할 겸 친구가 모임을 주최했다. 경조사로만 만나던 우리가 오랜만에 얼굴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몇 년 만에 잠깐이지만 눈까지 내려서 한파가 엄습한 날씨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한파에 모임 변동은 없나요?"라는 메시지를 남겼지만, 아무런 답변이 없다. 변동이 없나 보다 하고 참석을 했다.





어느 모임이나 필터를 거치지 않고 말을 하는 사람은 존재한다. 평소에 미꾸라지처럼 요리조리 빠져나가던 친구 혼자 신이 났다. 2개월마다 모임을 하자느니, 총동창회 치앙마이 다녀온 예기를 주제로 대화의 구심점을 놓치고 있었다. 처음 참석한 친구들의 근황을 물을 시간도 주지 못했다. 그러다 갑자기 내가 보낸 한파 관련 메시지를 꺼내 들며 "황당하다. 도대체 의도가 무엇일까" 하며 주변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다고 했다.

"그거 내가 올렸는데, 너무 추워서 혹시라도 변동이 있나 하고, "

"춥기는 뭐가 춥냐"

"너, 오늘 하루 종일 집에 있었지? 밖은 엄청 추웠어."

"아니, 백화점에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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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를 다니다 보니 머리가 띵할 정도로 추웠다. 서로의 입장 차이였다. 배려가 부족함이 여실하게 드러났다. 하지만 서운한 건 그 내용을 같이 있던 주변 사람들에게 보여주면서 의도를 물었다는 게 도저히 이해가 안 갔지만 굳이 갑론을박하고 싶지 않았다. 실내에만 있던 그는 밖이 얼마나 추웠는지 관심조차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웃고 떠들다 보니 밤 10시가 넘어서고 있었다.

"내일 출근도 해야 하고 먼저 일어날게. 아직까지 은퇴를 못하고 일을 해서 미안하다. 친구들아 ^^"

내가 먼저 자리를 털고 일어나자 다른 친구들도 마치 기다렸다는 듯 함께 일어났다.

"갈 사람은 먼저 가, 나는 더 마시고 갈 테니까"

결국 친구 두 명만 남고 모두 해산했다. 모임 때마다 필터를 거치지 않고 내뱉는 이 친구로 인해 마음의 상처를 받는 친구들이 많다. 언젠가부터 여자 친구들끼리 따로 모일 때는 부르지도 않는다. 3시간 30분이라는 시간 동안 우리는 정작 서로에 대해 얼마나 이야기했을까?


오늘 아침, 필사를 하다 만난 쇼펜하우어의 말씀이 마음에 와닿았다. "수준 낮은 대화를 만약 들었다면 그저 바라보며 어리석은 바보가 연기하는 희극의 한 장면이라고 생각하라." 웃음이 터지면서 위로가 됐다. 관객의 시선으로 바라보니, 어제의 불편했던 순간들이 한 편의 희극처럼 느껴졌다.




이 모임을 통해 나는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다. 독서와 글쓰기야말로 풍요로운 대화의 근간이 된다는 것이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사람은 무궁무진한 이야깃거리를 품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의 대화는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 가랑비에 옷 젖듯 조금씩 변화하는 나의 정신세계를 발견할 수 있었던 의미 있는 불금이었다.


아침 햇살이 창가에 비친다. 해는 늘 그 자리에서 우리를 비추고 있지만, 등을 돌리고 있으면 그 따스함을 느낄 수 없다. 마음을 열고 방향을 틀면 언제든 온기를 받을 수 있듯이, 진정한 소통 역시 마음을 여는 것에서 시작됨을 깨닫는다. 미안함과 용서, 감사와 축복, 그리고 사랑이 담긴 하루를 시작하며, 나는 오늘도 조금 더 나은 소통을 위해 한 걸음 나아간다. 미용고 축사를 외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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