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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치가 레벨업 되었습니다.

by 서강


위기 속에서 만난 진정한 나


우리는 흔히 '위기'라는 단어 앞에서 진정한 자아를 마주한다. 침착함을 유지하는지, 허둥대는지, 아니면 화를 내는지—필사를 하면서 깨달은 이 문장이, 현실의 시험대에 오르게 될 줄은 몰랐다. 토요일 오후, 병문안을 마치고 병원 근처 식당으로 향하던 순간이다. 주차장 입구의 턱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부주의로 차체가 턱 위로 올라타고 말았다. 별일 아닌 듯 집까지 무사히 도착했지만, 다음 날 친구와 삼랑진으로 바람 쐬러 가려 시동을 걸자 이상한 떨림과 심상치 않은 소음이 들려왔다. 결국 친구 차로 출발했다.




"경험치 레벨업"


황금연휴가 지난 화요일, 아침 일찍 서둘러 가까운 현대블루핸즈 서비스센터 검색을 하고 견인차를 불렀다. 견인차를 타고 이동 도중, 기아오토서비스센터를 운영 하는 지인에게 연락했다. 30km가 넘는 거리였지만,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안심이 됐다. 차 상태를 설명만 듣고 와도 된다고 했다.


"가까운 곳에서 먼저 상태 점검을 받아보시고 결정하세요. 나중에 추가 견인은 km당 2,000원만 내시면 됩니다." 견인 기사의 조언에 잠시 고민했다. 오른쪽 검지와 중지를 모아 귀 옆에 붙이는 '해빙신호등'을 켰다. 결정할 일이 있을 때, 현명한 판단을 위한 더해빙에서 알게 된 방식이다. 결국 가까운 서비스센터로 가기로 했다.


집에서 4km 내에 있는 현대블루핸즈에 도착하자, 차를 살펴보더니 "생각보다 상태가 좋지 않네요. 자차보험이 있으시면 정비공장으로 가시는 게 좋겠습니다." 대학병원에 가야 할 환자가 동네 의원에 들른 격이었다. 후회가 밀려왔다. '처음부터 정비공장에 갈걸...' 서비스센터에서 소개해준 정비공장에 전화를 하니, 오늘 입고가 불가능하다고 내일 오라고 한다. 출근은 해야 하는데, 간단히 해결될 줄 알았던 일이 점점 커지고 있다. 순간 멘붕이 밀물처럼 밀려든다. 잠시 쉼호흡을 한 후, 생각을 정리했다.


이사 오기 전 다니던 현대블루핸즈 정비공장이 생각났다. 역시나 보험처리가 안된다고한다. 보험처리가 가능한 정비공장을 소개시켜주었다. 보험회사에 견인 접수를 다시 했더니, 하루에 한 번만 무료라고 한다. 견인 기사의 말과 달랐다. '우씨...' 하지만 어쩌겠는가, 수리는 맡겨야 했다.




시간과의 사투가 시작

아침에 필사한 문장이 떠오른다.

"위기 상황이 닥치면 침착함 유지, 허둥댐, 화를 냄..."

글로 쓰거나 말로 하긴 쉽지만, 막상 상황에 닥치니 말처럼 행동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방금 필사한 내용이 아직 잉크도 마르기 전이라 마음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그래, 침착하자. 차분하게 생각하면 돼.'


견인차가 도착했고, 준비하는 동안 정비공장 연락처도 받았다. 견인 거리는 14km, 8만 원의 비용을 지불했다. 처음부터 정비공장으로 갔더라면 30km 이내는 무료였을 텐데... '까비 까비 아까비다.' 자차보험이 있어 본인 부담금 20%만 지불하면 되는것이 정말 다행이다. 소개받은 정비공장 대표의 인상이 좋아 믿음이 갔다. 제대로 된 정비 공장을 알아두는 것도 차가 필수인 시대에 좋은 현상이다.


손발처럼 나를 이동시켜 주던 차와 내일 다시 만날것을 약속하고, 오랜만에 지하철을 타고 출근했다. 아침에 기록한 글이 단어의 경험, 현실의 시험대에 올랐고, 다행히 시험은 무사히 통과했다. 일상의 경험들이 파이처럼 겹겹이 쌓여 태도, 관계, 지성, 기품, 사색의 깊이를 만들어 간다. 아침에 필사하며 깨달은 지혜가, 잠시 후 나의 행동을 인도한 것처럼, 삶은 늘 배움과 실천의 연속이다. 위기는 결코 우리를 무너뜨리기 위해 오는 것이 아니라, 진짜 모습을 비추는 거울이 되어준다. 거울 속에서 발견한 나의 모습이, 다음 위기를 맞이할 때 더 단단한 나로 서게 해주는 밑거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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