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구름이 심상치 않게 몰려오는 걸 보며 문득 생각했다. 내 언어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라는 비트겐슈타인의 말처럼,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는 우리의 세계를 규정한다. 나는 평소에 어떤 언어를 자주 사용하고 있는지, 그 언어가 내 세계를 어떻게 구축하고 있는지 점검하게 된다.
외향적이고 적극적인 사람을 보면 우리는 쉽게 '열정이 많다'라고 판단한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그것은 판단이다. 눈에 보이는 그것이 진정한 열정이 맞을까? 때로는 조용히 꾸준함을 유지하는 내면의 열정이 더 강렬하고 깊을 수 있다.
"죽는 날까지 선한 마음으로 산다는 게 과연 가능할까?" 이 질문은 사색의 늪으로 빠지기 충분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시로 악마의 마음이 일어나기도 하는데, 선과 악을 품고 사는 것이 인간의 본질이 아닐까. 단지 우리는 악한 마음을 억누르고, 선한 마음으로 살려고 노력할 뿐이다.
비트겐슈타인은 인간의 마음을 잘 알고 "죽는 날까지 선한 마음으로 아름답게 살기 위해서 나는 어떻게 해야만 하나?"라는 명제를 제시한다. 죽는 날까지 선한 마음으로 아름답게 살기 위해서 나는 어떻게 해야만 하나?
이 질문에 대한 나의 답은 올해 부산큰솔나비독서모임 연말 송년회에서 찾았다.
송년회에서 우리는 각자의 '원 워드'를 적는 시간을 가졌다. 2024년은 "행복하게", 그리고 다가오는 2025년은 "꾸준하게"로 정했다. 올해는 왠지 선택과 집중을 하고 싶었다. 욕심을 내려놓고 정말 내가 하고 싶고, 해야 할 일, 한 가지에만 집중을 하고 싶었다.
몇 가지 작은 약속을 스스로에게 했다.
체계적인 글쓰기 공부를 위해 문창과 편입하기.
매일 꾸준하게 독서하기
매일 꾸준하게 필사, 낭독하기
매일 꾸준하게 식단 조절하기
매일 사랑해 말하고 안아주기
현재까지는 이 약속들이 잘 지켜지고 있다. 연말에 한 해를 돌아보면서 후회 없는 삶이었노라고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비가 오려는지 하늘의 구름이 심상치 않은 것을 알아차리듯, 살아가면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분석하고, 예측하고, 확신하는 것 역시 일종의 알아차림이다. 우리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작은 구름들, 그것이 악한 감정이든 선한 감정이든, 그저 알아차리고 받아들이는 것이 첫걸음일지도 모른다. 꾸준함이라는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매일 조금씩, 작은 실천들이 모여 우리의 삶을 바꾸어 간다. 언어가 세계를 만들듯, 꾸준한 행동이 우리의 미래를 만든다. 오늘도 나는 꾸준하게, 때로는 미련하게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