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원 작가의 세계 철학 전집 중 3권 [내 언어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이다]를 펼쳤다. 20세기를 대표하는 가장 열정적인 천재, 엄청난 유산을 포기한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이 강조하는 키워드는 "언어"다. 언어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믿습니까? "
"믿습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 대사. 드라마나 영화에서 종종 보이는, 특히 사이비 종교에서 자주 쓰이는 말이다. 어떤 이들은 "본인도 못 믿으니까 '믿습니까?'라고 묻는 것"이라 말하기도 한다. 틀린 말도 아닌 듯하다. 진정으로 믿는다면, 굳이 확인할 필요가 있을까?
우리는 살아가면서 "너만 믿는다" "나, 믿지"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비트겐슈타인은 '믿는다'는 말 한마디 속에도 깊은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 정말 가능성을 믿는 사람의 '믿는다'와, 가능성은 믿지 않으면서 말로만 '믿는다'라고 하는 사람의 차이는 하늘과 땅만큼 다르다. 이 구절을 필사하다 문득 아들이 떠올랐다. 가족 단톡방에 책 내용을 공유했다. 아빠의 유전자를 거의 99% 물려받았지만, 판단력과 추진력만큼은 아빠보다 1% 더 뛰어났다.
아들은 가능성이 있는 무언가에 꽂히면 마약처럼 중독성을 보인다. 좋은 방향이면 다행이지만, 나쁜 방향이라면 가족 모두가 힘들어진다. 다행히도 아들의 판단력은 지금까지 좋은 선택으로 이어졌다. "절대, 기죽지 말고 살아야 한다."라는 아빠의 말에 가스라이팅이라도 된 듯, 쥐뿔도 없으면서 절대 기죽지 않는 아들, 가능성이 보이면 모든 방법을 총동원해 알아보고, 방법이 나오면 즉시 행동으로 옮긴다. 이것이야말로 비트겐슈타인이 말한 '가능성을 믿는 자가 말하는 믿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홍수처럼 밀려들면서, 아들이 대견하다는 생각을 한다.
부동산 사무실을 오픈할 때도 그랬다. 권리금 때문에 가족 모두가 반대했지만, 아들의 생각은 단단했다. "500세대 단독 부동산은 정말 찾기 어렵다"며 무조건 되는 자리라고 확신했다. 당시에는 이 분야를 몰라 이해하지 못했다. 가족회의 끝에 모두가 반대했고, 혼자서 할 수 없으니, 엄마가 꼭 좀 도와달라고 했지만 그 역시도 가족 모두 반대표를 던졌다. 하지만 오픈 전 사무실 청소를 해주는데 막상 현장을 보니, 도와주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합류했다.
결국 아들의 판단은 적중했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라고, 아파트 상가에 즐비하게 들어선 부동산사무실을 보면, 엄청난 경쟁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남 일 같지가 않다. 아들의 말대로 단독이라는 메리트가 엄청나다는 것을 이제야 그것을 알게 됐다. 지금도 아들은 자금력이 턱없이 부족함에도 새로운 사업을 추진 중이다. 가능성을 보고 행동으로 옮기는 아들을 보며, 어릴 때부터 사업가 기질이 엿보이더니 역시나 사업가 기질이 다분하다는 것을 느낀다.
아이 셋은 모두 성향이 다르다. 마치 해의 방향이 계절에 따라 달라지듯, 자연을 관찰하며, 아이들이 자랄 때 성향을 관찰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주말을 알리는 하늘과 구름, 강과 산, 나무들이 정겹게 다가온다. 내가 어떤 감정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세상은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주말이라 편안한 마음으로 보니 내 마음도 강물처럼 잔잔해진다.
우리의 언어가 만드는 세계의 한계. 그리고 그 언어로 표현되는 믿음의 깊이.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은 일상 속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 말이 아닌 행동으로 가능성을 증명하는 아들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언어를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