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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는 나의 선생님

by 서강


나의 선생님, 막내딸


어쩌면 인생의 진리는 가장 뜻밖의 곳에서 발견되는 법이다. 내가 평생 놓치고 있던 큰 지혜를 막내에게서 배우게 될 줄이야, 태어나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적금이라는 것을 넣어보지 않았다. 보험만 열심히 넣고 있다. 경제관념이 전혀 몸에 베이지 않은 나는 숫자로 가득 찬 통장을 바라보는 일을 경험하지 못했다. 하고 싶은 것은 많은데, 그럴 때마다 자금이 없어 포기해야 했다. 아이들에게 이런 습관을 자연스럽게 물려주고 말았다. 특히 첫째와 둘째가 심각하다.


"돈은 버는 것보다, 쓰기를 잘 써야 해, 아무리 월급이 많아도 모으지 못하면 내 돈이 아니야."


이제야 그 말의 뜻이 뼛속깊이 파고든다. 첫째와 둘째는 막내보다 월급이 월등히 많다. 그러나 그들은 적금을 들지 않았고, 그 결과 정작 필요할 때 현금이 없다. 반면 막내는 언니, 오빠에 비해 월급이 절반에도 못 친다. 그럼에도 꾸준히 적금을 넣는다. 남은 돈으로 자신이 배우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을 한다.



막내는 돌연변이?


지금 막내는 잠시 휴직 중이다. 그런데도 삶은 누구보다 풍요롭다. 쉬는 동안에도 하고 싶은 공부와 여행을 즐기며 시간을 참 알차게 사용한다. 그동안 모아 둔 적금과 퇴직금으로 여유로운 생활을 즐기고 있다. "막내에겐 다 계획이 있었다." 내 딸이지만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한다. 막내는 돌연변이가 확실하다. 첫째 둘째와 다른 태교라면, 태담을 많이 해준 것뿐인데, 혹시 그 효과인가, 우리 부부사이에서 나올 수 없는 특별한 유전자다. 설마, 신생아실에서 아이가 바뀐 건 아니겠지, 확실히 아니다. 외모가 아빠랑 똑같다.


특별한 지혜를 타고난 아이, 그것은 타고난 것이 아니라 선택의 결과라는 것을, 팔십 먹은 할머니가 세 살 먹은 손자에게도 배울 것이 있다는 옛말이 있다. 이제야 그 말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게 됐다. '내가 어른이니 다 안다'는 교만한 마음으로 마음의 문을 닫으면, 세상의 어떤 지혜도 들어올 수 없다. 중요한 것은 배우려는 마음의 빗장을 활짝 여는 일이다.



'입춘대길(立春大吉)'


봄이 시작되면 사람들은 뒤질세라 '입춘대길(立春大吉)'이라는 글귀를 벽이나 대문에 붙인다. 크게 길하고 경사스러운 일이 많이 생기기를 기원하는 마음을 담아서, 나 역시 오늘부터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막내에게서 배운 지혜를 실천해 보려 한다.


적금을 넣기 시작하는 것, 그것은 단순히 돈을 모으는 일이 아니라 미래의 나에게 선물을 준비하는 일이다. 막내가 그랬듯이, 비록 늦었지만 나도 이제 내 삶을 위한 자금을 마련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으로 배우고 싶었던 것, 해보고 싶었던 것들을 하나씩 이루어 나갈 것이다.


막내를 통해 나는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다시 배운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며, 배움에는 끝이 없다는 것을, 마음의 빗장을 활짝 열고, 내 마음에 입춘대길(立春大吉)'을 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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