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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화수분

by 서강


평소 구름이 하늘을 물들이는 것 같더니 오늘은 하늘이 구름을 파란색으로 물들이고 있다. 강물에 비친 파란 하늘이 참 아름답다. 이 멋진 풍경을 어떤 언어로 표현할 수 있을까? 내 언어의 한계가 곧 내 세계의 한계라면, 내 언어로 내 세계를 물들이게 된다. 내 언어 창고는 부유한가?


신분증이 나를 증명하듯 나의 언어가 곧 나 자신을 증명한다. 이것이 내 일상의 출발점이 된다. 온라인 시대, 공존하며 살아가야 하는 악플러들 사이에서 문득 나는 어떤 댓글을 남기고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어떤 단어를 조합해서 표현하느냐, 그것이 내 언어로 나타난다. 그리고 그 언어는 내 세계를 만든다.


주관적 확실성에 갇히지 않기 위해서 언어의 한계를 넘어서야 한다. '확실하다'는 주장의 근거는 객관적 자료로 제시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자칫 자기주장에 갇히기 쉽다. 이런 깨달음은 내게 큰 변화를 가져다준다.

댓글.jpg 내 언어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이다 中 악플러에 대한 정의


단어를 조합해서 멋진 작품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언어가 저장되어 있어야 한다. 언어 창고에 근사한 언어를 가득 쟁여두고, 곶감 빼먹듯, 하나씩 빼서 잘 사용하기 위해서는 언어의 화수분을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내가 매일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나의 도전이다.


해가 없다면 이 세상은 암흑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우리 눈에 보이지 않을 뿐 해는 존재한다. 그렇기에 흐린 날에도 암흑은 아니다. 언어도 마찬가지다. 때로는 보이지 않더라도, 우리 안에 존재하는 언어의 힘이 세상을 밝힌다.



오늘은 어제의 누군가가 소망하던 날이다. 내게 주어진 시간은 그저 주어진 게 아니다. 귀한 선물로 다가온 것이다. 이 깨달음은 내 삶을 바꾼다. 시간과 에너지를 어떻게 사용하느냐는 자기 몫이다. 내게 주어진 소중한 시간, 내게 허락된 귀한 에너지를 어디에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사색하게 된다. 만나면 에너지를 받는 사람이 있고, 에너지를 뺏기는 사람이 있다. 나는 어떤 사람으로 존재하고 있을까?


해가 세상을 공평하게 비추듯 일상의 삶 속에서 공평함을 유지해 보려 한다. 그리고 그 공평함은 언어에서 시작된다. 내가 선택한 단어들, 내가 쓰는 문장들이 누군가에게 햇빛이 되어줄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내가 찾은 삶의 의미다. 언어는 단순한 의사소통의 도구가 아니라 세계를 창조하는 마법이다. 오늘 내가 쓴 글, 내가 한 말, 내가 남긴 댓글은 어떤 세계를 만들어가고 있을까? 이 질문이 이제 내 하루의 시작과 끝에 늘 함께한다.


KakaoTalk_20250331_083039744_02.jpg 내 언어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이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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