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입 밖으로 나오는 말은 언어의 악취일까, 향기일까?
어제와 달리 파란 하늘에 솜털 같은 하얀 구름이 물들이고 있다. 한 폭의 수채화가 따로 없는 풍경 속에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말을 하지 않으면 무향이지만, 한 번 입 밖으로 나오면 그것은 악취가 되거나 향기가 된다. 나의 말은 과연 어떤 향을 품고 있을까.
우리는 누군가의 진짜 모습을 알고 싶을 때가 있다. 사위를 볼 때 술을 먹여보면 그 사람 됨됨이를 알 수 있다고 하지 않던가, 마찬가지로 사람의 내적 수준은 화가 났을 때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분노를 하게 만들면 그 사람의 본질이 가감 없이 모습을 드러낸다.
비트겐슈타인은 "천재가 아니면, 죽는 게 낫다"는 극단적인 표현을 거침없이 말했다. 만약 우리가 알고 있는 천재라면 살아남을 사람은 몇 안 되는데, 나도 죽는 게 나은 걸까?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천재란, 분노할 일에 분노하는 사람이 아니라 영리하게 이성을 찾는 사람을 말한다는 것을 김종원 작가의 깨달음을 통해 알게 됐다.
분노할 일에 분노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쉬운 일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감정이 시키는 대로 행동한다. 아들의 양복바지가 양말 속으로 살짝 끼인 것을 발견한 손님의 지인이 "저기요, 양말 속으로 끼인 양복을 좀 빼주시겠습니까?"라고 했다. 아들은 무안함에 화가 잔뜩 났다. 보기 싫어서 거슬린다는 표현이었으니까, 그 말을 들으면서 그냥 모른 체하거나, "양말 속으로 바지가 살짝 끼었네요"라고 했으면 좋았을 것을, 굳이 그런 표현을 택한 것이다. 나도 모르게 아들에게 말했다. "그 사람의 내적 수준이 그것밖에 안 돼서 그러니, 긍휼히 여기고 그러려니 하는 게 에너지 소모도 안되고 좋아, 그 사람 때문에 네 소중한 에너지를 소모하면 너만 손해야." 이 말에 화가 난 아들의 마음이 수그러들었다. 이 말을 하고 화가 수그러든 아들보다 내가 더 놀랬다. 어떻게 이 상황에 이런 말을 할 수 있게 됐지? 꾸준한 필사 덕분에 내면이 단단해져가고 있는 증거다.
사람의 입은 참 묘한 곳이다. 먹는 것도 하지만, 말하는 것도 한다. 먹는 것은 입으로 들어가서 빠져나오기라도 하지만, 입에서 나오는 말은 주워 담을 방법이 없다. 한 번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끝이다. 마치 뿌려진 물은 다시 담을 수 없는 것처럼,
상대와 맞서 함께 화를 내면 악취만 진동한다. 똑같은 수준으로 내려가게 되는 것이다. 차라리 입을 다물면 무취라도 지킬 수 있다. 분노할 일에 분노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남다른 시선"을 가지는 것이다. 이것이 비트겐슈타인이 말한 '천재'의 길이다.
사업하는 사람들은 가장 먼저 상대와 식사를 한다고 한다. 식사 자리에서는 자신을 속일 수가 없기에, 상대의 속내를 알아차릴 수 있다. 식당 직원들을 대하는 태도, 물이나 수저, 국 등을 떠주는 배려, 이런 사소한 것에서 모든 것을 파악한다. 말하지 않아도 그 사람의 품격은 행동으로 드러난다.
살다 보면 차라리 말을 하지 않는 것보다, 말을 해서 오히려 자기 수준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그들은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내면을 폭로하고 있는 것이다.
봄이라고 하기엔 날씨가 춥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의 광선을 받아 벚꽃이 만개했다. 꽃은 자기 할 일을 때에 맞춰 묵묵히 해낸다. 그 어떤 날씨에도,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역할을 다한다. 말도 그래야 하지 않을까? 때와 장소에 맞게, 필요한 순간에 피어나는 꽃처럼,
다짐해 본다. 내가 할 일을 조용히, 충실하게, 묵묵히 해내리라.
묵묵히 빛을 비춰주는 해처럼,
시절 따라 때에 맞춰 꽃망울을 터뜨리는 꽃처럼.
그리고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이 악취가 아닌 향기가 되도록.
언어는 사람의 품격을 드러내는 거울이다. 오늘 나는 어떤 말을 할 것인가?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은 악취일까, 향기일까? 그 답은 내 안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