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는 내면의 마음을 바깥으로 드러내는 창문이다. 어릴 적, 내 삶의 중심은 언제나 '밖'에 있었다. 나는 그곳에 없었다.
"아비 없는 자식 소리 듣는 행동 하면 안 된다."
엄마는 홀몸으로 우리 세 남매를 키우며 이 말씀을 세뇌를 시키듯 되뇌었다. 그 결과, 나는 항상 타인의 시선 속에서 살았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이 행동은 어떻게 비칠까—내 인생의 중요한 결정들을 모두 이 질문에 맞추어 살았다. 검지로 타인을 가리키면 나머지 네 손가락은 자신을 향한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나는 오랫동안 내 손가락이 향하는 곳을 보지 못했다. 부정도, 긍정도 오롯이 나를 바라보는 일이란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너 자신을 맹렬히 바라보라. 타인을 의식하는 것은 비열한 짓이다."
비트겐슈타인의 이 말을 일찍 알았더라면, 내 인생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타인의 시선에 맞춘 선택들이 가져온 힘든 삶의 무게를 덜 수 있었을까? 평생을 후회하며 살아온 선택이 있다. 나이도 어렸지만, 돌아보면 결국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고 내린 결정이다. 이제야 깨닫는다—글쓰기는 내 마음의 거울이며, 내 마음을 상대가 허공에 그리게 하는 작업이라는 김종원 작가의 말을,
일기도 결국 내 마음을 표현하는 글쓰기다. 사물, 사건, 나, 타인, 모든 것을 바라보는 시선이 가장 중요하다. 나의 '심상'을 어떻게 글로 표현할 것인가? 이 질문이 내게는 인생의 숙제로 다가온다.
오늘 아침, 날씨는 화창하다 못해 청아하다. 내일은 드디어 아들의 결혼식. 그런데 비 소식이 있다고 한다. 며느리 될 아이는 걱정이 많다.
"비가 오면 잘 산대, 걱정 안 해도 돼. 예식은 저녁이니 오후에 잠깐 땅만 적시고 말 거야."
표면적으로는 이렇게 위로했지만, 내심 나도 걱정이 된다. 지인들에게 날씨를 위해 기도를 부탁했다.
창밖을 보니 쨍하고 해가 떴다. 해와 잠시 대화를 나눈다. '내일도 꼭 만나자'라고. 끌어당김의 법칙처럼, 내가 된다고 믿는 대로 해를 만날 것이라 확신한다.
인생의 행복은 타인의 시선이 아닌, 자신의 마음을 정직하게 바라보는 데서 시작된다. 작은 일상에서도 나는 이제 비트겐슈타인처럼 나 자신을 맹렬히 바라보려 한다. 타인의 평가에 흔들리지 않고, 내면의 진실을 글로 써내려 가는 일, 그것이 진정한 나의 언어를 찾는 여정이다.
해가 뜨고 비가 내리는 일상 속에서도, 내 마음의 날씨를 스스로 결정한다. 이 깨달음을 통해, 내 삶의 중심은 드디어 '나'에게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