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창가에 앉아, 한 권의 책을 펼쳤다. 작은 활자들이 모여 만든 문장의 바다를 바라보며 문득 생각했다. 진정한 독서란 무엇일까? 글자를 해독하는 능력? 아니면 그 이상의 무언가? 글을 읽을 줄 안다고 해서 독서가 아니다. 그것은 단지 글자를 알아보는 능력에 불과하다. 진짜 독서는 글 속에 담긴 참뜻을 알고, 그 의미를 깨닫는 과정이다. 마치 두 개의 강물이 만나 하나의 큰 흐름을 이루듯, 작가의 생각과 내 생각이 만나 새로운 깨달음이 피어난다. 한 마디로 도(道)가 통하는 순간이다.
일요일의 강풍이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어제는 비가 내리더니, 오늘은 바람이 분다. 자연도 끊임없이 변화하는구나. 내 일상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결혼식에 와준 손님들을 치르고, 1~2시간 자고 일어나서 아침 일찍 친지들을 배웅했다. 한복을 반납하고, 멀리서 친구들이 묵고 있는 숙소로 핸들을 돌렸다. 이런 변화 속에서도 필사는 계속 이어진다.
필사는 루틴으로 자리 잡혔다. 좋은 글을 베껴 쓰며 그 글을 나의 것으로 만드는 과정이 즐겁다. 하지만 결혼식 이후의 정신없는 일상에 블로그와 브런치에 글을 올리지 못했다. 여행 중에도 한 번도 미루지 않았던 글쓰기가 처음으로 하루 뒤로 밀렸다. 손님을 치른다는 게 이렇게 큰일인 줄 미처 몰랐다. 이제야 어른들이 "큰 일 친다고 고생했다"라는 인사를 건넨 이유를 알겠다.
나의 것으로 만든다는 것은 그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언어로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다. 책을 읽고 그 내용을 자신의 언어로 풀어낼 수 있을 때, 비로소 그 지식은 나의 것이 된다. 마치 음식을 씹고 소화해야 영양분이 되듯, 글을 읽고 소화해야 진정한 독서가 완성된다.
우리는 종종 책을 많이 읽는 것에 집중한다. 하루에 한 권을 읽는다. 1년에 100권 을 읽는다는 등, 하지만 책권수를 채우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 안에 담긴 지혜를 내 삶에 녹여내는 일이다. 독서를 통해 얻은 깨달음이 일상의 작은 결정들에 영향을 미칠 때, 그때 독서는 진정한 가치를 발한다.
필사 후 창밖 풍경은 강풍이 지나간 자리에 맑은 하늘이 드러난다. 변화는 언제나 새로운 시작을 알린다. 밀린 글을 쓰고, 책을 펼쳐 새로운 생각과 만난다. 그 만남이 나를 조금 더 성장시킬 것이라 믿는다. 독서는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삶의 방식이다. 글을 통해 타인의 경험과 지혜를 빌려 내 삶을 풍요롭게 하는 여정. 그 여정에서 나는 오늘도 한 걸음 더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