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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고, 울고 공감하는 글쓰기

by 서강


생각의 필터, 펜의 진심


비트겐슈타인의 문장 앞에서 한참을 멈추게 된다. "손에 들려있는 펜이 무엇을 쓰는지 머리가 알게 하기 위함." 이 표현의 깊이에 빠져든다. 생각이 언어가 되기 전, 우리는 필터를 거친다. 잘 필터링된 언어는 맑은 물처럼 사람을 살리지만, 생각 없는 말은 어떨까?


우리는 누군가의 내면을 들여다보지 않고도 그 사람이 생각하고 말하는지, 생각 없이 말하는지 알아차린다. 신기한 일이다. 마음을 내고, 생각을 거쳐, 입으로 나오면 언어가 되고, 손끝의 펜으로 표현하면 글이 된다.


"끝나고 나면 허무하다."


아들의 결혼식을 준비하며 오빠가 남긴 명언이 귓가에 맴돈다. 몇 달 준비한 예식이 후다닥 끝나버리면 헛헛함만 남는 경험자의 말이다. 예식에 하객으로 참석할 때마다 목격하는 광경, 신부 입장이 끝나자마자 식사하러 가는 하객들의 모습이 늘 마음에 걸렸다.


우리 아이들 예식만큼은 하객과 주인공이 한마음이 되어 즐기는 축제 같은 에식을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다행히 며느리도 같은 생각이다.



우산을 쓰고 등장하는 신부의 모습은 비가 오지 않으면 볼 수 없는 멋진 광경이었다. 날씨 때문에 걱정한 것은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하객과 주인공이 하나가 된 축제 같은 결혼식이 무사히 막을 내렸다. 예식을 마치고 헛헛함 대신 긴 여운이 남는다.


"지금까지 다녀 본 결혼식 중에, 최고로 멋지고 행복한 시간이었어."


예식전과 달리 예식 후 오빠의 또 다른 명언이 내 마음을 뿌듯하게 한다. 비 오는 가운데 저녁 예식에 참석한 하객들도 이구동성으로 인사를 건넨다.


"멋진 결혼식에 초대해 주어, 함께 할 수 있어서 너무 고맙습니다."


모든 것이 기적이고 축복이고 감사하다. 2개월 전부터 축사를 준비하며 수십 번의 퇴고를 거쳤다. 축사 도중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는 사태를 막기 위해 부정적인 감정이 틈을 타지 못하게 공구리를 쳤다. 감정을 다스리고 낭독 연습을 반복했다. 진심으로 아이들의 앞날을 축복하는 마음을 꾹 꾹 눌러 담았다. 손에 들린 펜이 무엇을 쓰는지 머리가 알게 하기 위해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다.


많은 분들이 축사가 감동적이었다고 웃고, 울기를 반복했다고 한다. 하객들의 진심이 담긴 인사를 받으면서, 결국 진심을 담은 글은 공감을 얻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필터링된 생각이 담긴 언어는 맑은 물처럼 사람의 마음을 적신다는 것을,


말과 글이 잘 필터링되어 나올 때, 그것은 누군가에게 선물이 된다. 생각의 깊이가 언어의 진실성을 만든다. 비트겐슈타인의 말처럼, 때로는 펜이 머리를 이끌어 더 깊은 생각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KakaoTalk_20250415_093602499_01.jpg 내 언어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이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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