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왜? 왜?
창가에 스며드는 첫 햇살처럼, 건강의 소중함도 어느 순간 가슴속으로 살며시 스며든다. 옛 현인들의 말씀이 귓가에 맴돈다. "재산을 잃으면 조금 잃는 것이요, 명예를 잃으면 많이 잃는 것이지만, 건강을 잃으면 전부를 잃는다..." 그 말의 의미를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마치 운명의 장난처럼, 친구의 소식이 바람을 타고 전해왔다.
"위가 이렇게 중요한 줄 몰랐어..." 위암 수술을 앞둔 친구의 떨리는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하다. 얼마 전, 건강검진을 받기 전까지 너무 건강하던 친구가 위암이라니, 믿어지지가 않는다. 폭풍우가 휘몰아치듯 찾아온 진단 소식에, 친구들은 위로의 말을 찾지 못해 그저 침묵하고 있다. 먹는 걸 정말 좋아하는데, 그 좋아하는 음식을 마음껏 먹지를 못하는 것은 그 친구에게 너무나 큰 형벌이다.
친구가 조용히 말을 꺼낸다. “건강할 때는 장기기증을 해야지 생각했는데, 막상 닥치고 보니 영혼이 장기 없이 떠돌게 된다는 생각이 들더라” 우리는 누구나 언젠가는 죽는다. 하지만 평생 죽지 않을 것처럼 속고 살뿐이다. 죽음을 생각하는 친구의 말이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사람은 누구나 영과 육을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수술이라는 두려움 앞에 오롯이 홀로 맞서야 하는 친구의 마음을 감히 이해한다고 말할 수가 없다.
매일 아침, 소변을 시원하게 볼 수 있다는 사소한 일상의 축복에 감사한다. 오장육부를 쓰다듬으며 밤새 제 할 일을 해준 것에 대한 감사 인사도 빼먹지 않는다. 하지만 돌아보면 부끄럽다. 몸이 좋아하는 음식이 아닌, 입맛만을 좇아 기름진 음식과 밀가루 음식으로 배를 채우지 않았던가.
이제는 설탕과 밀가루를 줄이고, 현미밥과 닭 가슴살, 계란, 두부로 식단을 바꾸어가고 있다. 점심시간, 칼국수와 짬뽕 대신 건강식을 고르는 작은 실천이 시작 됐다. 건강을 챙기는 것이, 나와 가족을 위한 길이다. 긴병에 효자 없다는 말이 있듯, 집안에 아픈 사람이 있으면 우환이 가득하다는 어른들 말씀이 모두 맞다. 무엇보다 가장 힘든 것은 자신이다. 나를 힘들지 않게 하기 위해서 몸의 소리에 민감하게 즉각적으로 반응하기로 했다.
뉴스에서 전해지는 ADHD와 우울증 소식은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허약해진 마음을 달래지 못해 극단적 선택을 하는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내면의 단단함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된다. 나도 한때는 생을 포기하고 싶었으니까, 돌아보면 내면이 탄탄하다는 착각에 빠져 살았던 것 같다.
차 한 잔의 여유를 통해 마음을 들여다보고, 좋은 책 한 권의 위로를 받는다. 필사를 하면서 나를 발견하고 나를 위한 시간을 가진다. 글을 쓰면서 내 생각을 정리하고 내 마음을 위로한다. 마음의 정원을 필사로 가꾸고 있다. 긍정의 씨앗을 심어 희망의 꽃을 피워내는 일상의 정원사가 되어본다. "나의 현재의 모습은 내가 살아온 모습이다. 나의 미래의 모습은 내가 살아야 할 모습이다". kms
월드컵 시즌, 치킨집을 하면서 혹사당한 무릎이 아직도 아프다. 만보 걷기도, 등산도 이제는 먼 나라 이야기가 됐다. 희망사항일 뿐이다. "엄마, 조금만 더 걸으면 되는데, 저기는 꼭 가보고 싶은 곳이라,?" 딸과의 여행에서 2만 보를 걸었던 날, 도저히 더 못 걷겠다는 말에 서운해하던 딸, 퉁퉁 부은 무릎을 보고 놀라 미안해하던 딸의 표정이 떠오른다.
친구는 마라톤을 뛴다는데, 부러운 마음뿐이다. 하지만 절망하지 않는다. 내게 맞는 운동을 하면 된다. 수영과 산책만으로도 충분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걸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식단 일기를 쓰기로 했다. "사랑하는 내 몸에게 좋은 것으로 선물하기 위함이다." 이제는 영혼과 육체의 균형을 찾아가는 여정이 시작된다. 건강이란 선물을 소중히 여기며, 매일 작은 실천을 이어가는 것. 그것이 바로 행복한 삶의 시작이 아닐까.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요한삼서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