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은 조용히 다가온다. 하루의 시작과 끝 사이, 낡은 거울 앞에 서 있는 나에게 조용히 손을 내밀었다. 삼십 년 동안 내 곁을 떠나지 않던 살들이 두 달 만에 뒷모습을 보였다. 체중계 위. 나는 낯선 숫자와 마주했다. 앞자리가 바뀐 그 순간, 나는 나를 처음 본 사람처럼 멈춰 섰다. 익숙하던 무게의 자리엔 조금은 낯선 내가 숨을 고르며 서 있었다.
“내가 나를 바꿨다." 작은 탄성이 새어 나왔다. 이토록 달콤한 이별이 있을 줄은 정말 몰랐다. 변화는 사소한 말 한마디에서 시작됐다. “엄마, 오빠야 결혼식이 혼주로 앉을 유일한 기회일지도 몰라.” 비혼주의를 외치는 큰 공주가 무심하게 던진 한마디였다.
그 말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 오랜 잠에 빠져 있던 나를 흔들어 깨웠다. 낯설고 무겁기만 하던 거울 속 얼굴이슬라이드처럼 스쳐 지나갔다.
나는 언제부터 내 몸을 놓아버린 걸까.
둘째를 낳고부터였을까,
폐경 이후였을까.
살들은 내 안에 진을 치고 요새를 지켰다. 큰 기대 없이 일생에 첫 혼주석인데 이왕이면 조금이라도 이쁘게 하자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스위치온 다이어트, 단백질, 저탄수, 탄수제한식으로 식단조절만 하면 됐다.
무진장 애를 써도 안 빠지던 살들이 하나 둘 요새를 떠나기 시작했다.
결혼식 일주일 전. 드디어 체중계 숫자가 바뀌었다. 2개월 만에 9kg 감량 성공이다.
거울 저편에는 다소 낯선 이전의 내가 서 있었다. 잃어버린 나를 찾았다.
엄마로,
아내로,
하지만 늦은 시작은 없다.
삼십 년 전의 나를 다시 만났다
몸은 관심을 가져주는 대로 자란다.
살과의 이별은
숫자의 문제가 아니다.
존엄을 되찾고,
사랑을 기억하는 일이다.
그 끝에서
나는,
나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