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 #12, 가장 평온한 상태를 유지하며 묵묵하게 해내는 사람들
나는 지금 고전으로 가득한 이 땅에서
희열에 찬 상태로 마음이 들떠 있습니다.
과거와 현재가 동시에 내게 소리를 지르며
자신의 매력이 무엇인지 전해줍니다.
아, 저는 그들이 권유하는 방법으로
여기기 부지런히 다니며
위대한 작품을 관찰하고 있습니다.
날마다 새로운 기쁨을 즐기고 있어요.
그들이 나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하나이지만
내가 느끼는 행복감은 두 배나 됩니다.
나는 생각하고 또 비교합니다.
눈으로 만지듯 탐색하고
손으로 감각을 느낍니다.
[로마의 비가(悲歌) 5]
우리는 끝을 보려고 사는 게 아닙니다.
매일 조금씩 나아진 나를 보려고 사는 거죠.
끝은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오늘 이 순간을 사는 게 가장 큰 행복입니다.
<김종원 작가의 살아갈 날들을 위한 괴테의 시 中>
생각 없이 내뱉은 말이 상대를 아프게 한 날이 있었다. 그날 밤, 나는 내 언어에 책임감을 느끼며 침대에 누웠다. 마치 모래사장에 남겨둔 발자국처럼, 말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남긴다.
오늘도 나는 묵묵하게 필사를 한다. 펜 끝이 종이에 닿는 소리가 아침의 정적을 깨운다. 책상 위 작은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내 손등을 간질인다. 굳이 세상이 깨어나기 전, 1시간 일찍 일어나 마주하는 이 시간이 소중하다. "약속은 지키기 위해 하는 것." 어제저녁, 나에게 작은 약속을 했다. 다른 날보다 1시간 일찍 일어나자고. 약속 덕분에 기분 좋게 눈을 떴다.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자세히 보아야 비로소 보인다. 오래 보아야 진정 알게 된다. 책장을 넘기는 손끝마다 삶의 풍경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필사를 통해 만나는 문장들은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내게 속삭인다. "천천히 들여다봐."
사람은 생각하는 동물이 맞다. 생각을 하게 되면 깨를 채에 걸러 돌을 가려내듯, 나쁜 말은 자연스레 걸러지게 된다. 이것이 사색의 힘이다. 탐색하는 과정은 결국 사물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된다.
아침 9시가 넘어야 만날 수 있는 해를 오늘은 조금 일찍 맞이하고 싶은 마음에 1층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옆 동에 가려진 햇살을 보기 위한 작은 움직임이다. 마치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환하게 웃으며 햇살이 나를 반긴다. 5월이 주는 초록의 싱그러움도 함께, 숨을 크게 들이마시니 폐부 대청소가 시작된다. 아직까지 이곳은 공해로 오염이 심하지 않아서 아침 공기가 싱그럽다.
" 특별히 잘하는 게 없다. 하지만 꾸준히 하는 건 자신 있다." 필사를 매일 아침 꼬박꼬박, 마치 양치를 하듯 습관처럼 하다 보니 깨달음을 통한 나의 변화가 시작됐다. 대충 지나쳤던 사물을 들여다보며 대화하고, 생각보다 행동이 빨라 실수가 잦았는데 충분한 생각을 한 후 행동하게 되며, 매 순간 불평불만보다 감사의 마음을 가지게 된다.
독서의 재미는 깨달음이다. 먼저 깨달은 자가 펴낸 책을 통해 또 다른 깨달음을 얻는다. 그리고 내가 깨달은 것을 글로 나타내는 것이 글쓰기의 시작이다. 이렇게 지식과 지혜는 물방울이 모여 바다를 이루듯 쌓여간다.
1시간이 주는 여유가 행복하다. 서두르지 않아도 되는 시간. 나만의 사색을 즐길 수 있는 시간.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즐기리라. 인생은 깨달음을 얻어가는 과정이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처럼 맑은 마음으로, 오늘도 나는 페이지를 넘긴다. 필사의 시간이 가져다준 가장 큰 선물은, 나 자신을 들여다보며 나를 알아가는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