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 22 살아갈 날들을 위한 괴테의 시
열린 창문으로 불어오는 봄바람이 내 얼굴을 스친다. 귀 옆으로 빠져나온 머리카락이 바람에 일렁이며 뺨을 간지럽힌다. 기분 좋은 간지럽힘을 당하며 내 생각을 글로 옮기는 시간과 공간이 주는 편안함이 온몸을 감싼다.
오늘의 하늘은 유달리 신비스럽다. 청명하면서도 수수께끼 같은 표정을 짓고 있다. 마치 나에게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 며칠 전부터 시작된 배탈은 현재진행형이다. 삼겹살을 먹으면 배탈이 나는 몸의 신호를 알아가는 중이다. 이틀 전 가족회의 자리에서도, 어제 독서모임 도착 직후에도 화장실로 직행해야 했다. 오늘 아침엔 배탈을 넘어 복통까지 겹쳤다. 장염인 듯하다. 속을 비우기로 결심하고 오후 약속을 취소했다. 교육받으러 간 막내가 걱정되었는지 세 번이나 전화를 걸어왔다. 이온음료를 마셔보라며. 몸이 아프니 짜증이 일었다. 그런데 문득, 그 전화가 남편이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남편이 떠나던 그 해 설날이 생각난다. 명절 음식 준비를 끝내고, 몸이 안 좋아 누워있었다. 시어머니는 저녁 상을 차리라 했지만, 나는 꼼짝할 수 없었다. 그때 남편이 말했다.
"우리가 챙겨서 먹으면 되죠." 자주 아픈 아내의 몸 상태를 알아차린 것이다. 손수 흰 죽을 만들어와 미음이라도 먹어보라며 내게 건넸던 그 손길이 방금 전 일인 것처럼 생생하다.
필사를 하다 문득 깨닫게 된다. 나는 남편을 잃은 것이 아니라, 나를 아끼는 사람, 나의 말을 들어주는 사람을 잃은 것이다. 밤이 새도록 대화를 나누며 서로를 격려하고 응원하던 그 시절. 삶은 힘들었지만, 서로가 존재했기에 버틸 수 있었다. 누군가가 나를 알아준다는 것, 내 말을 들어준다는 것.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지는 그 사람이 떠난 후에야 절실히 느끼게 된다. 물건도 사람도, 소중한 것은 귀하게 다루는 법인데. 당연하게 생각했던 그 손길의 빈자리로 인해 항상 헛헛했던 것이다.
지금 내 옆에 누가 있어 아픈 내 몸을 걱정하는지, 그 목소리에 짜증 내지는 않았는지 돌아본다. 소중함은 늘 곁에 있을 때는 보이지 않다가 떠나고 나서야 그 형체를 또렷이 드러낸다. 막내에게서 걸려 온 세 통의 전화 역시 나를 아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