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잃어가며 맺은 관계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살아갈 날들을 위한 괴테의 시, 필사 #26

by 서강


《물에서, 사람에게서, 나를 건져 올리는 중》


물은 내게 공포였다. 바닥이 닿지 않는 깊이보다, 그 안에서 숨을 쉴 수 없다는 사실이 먼저 덮쳐왔다. 가슴이 조여 오고, 호흡이 가빠졌다. 트라우마 극복을 위해 2개월을 기다려 수영장 등록을 했다. 물에 들어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물을 두려워하지 않기 위해서 내딛는 첫걸음이었다. 같은 기수 사람들에 비해 진도는 더뎠다. 남들처럼 턴도 못 하고, 발차기도 서툴렀지만 내게 중요한 건 다른 데 있었다.

“저는 수영 선수가 될 게 아니라서요. 그냥 제 속도로 해볼게요.” 강사에게 내 진심을 말하고 나니, 물속에서 한 발 내딛는 일에도 작은 용기가 실렸다.


수영을 배우던 시기, 기수 언니 두 명과 종종 차를 마시고 밥을 먹었다. 처음엔 사람을 사귀는 것도 하나의 배움이라 여겼다. 하지만 만남이 거듭될수록 나는 점점 이유를 잃어갔다.

반찬 이야기, 남편 이야기, 자식 이야기, 그리고 또다시 같은 이야기. 다음 만남도 그다음 만남도 다를 게 없었다. 그 어디에도 자기 자신은 찾아볼 수 없었다. 말들이 돌고 돌아 끝내는 어느 날, 내가 왜 거기 있어야 하는지를 되묻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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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코로나가 시작됐다. 수영장이 문을 닫았고, 자연스레 관계도 닫혔다. 누군가는 멀어지는 것이 어려울 수 있다지만 나는 의외로 담담했다. 무언가 비워지는 자리에, 물이 고이듯 새로운 감정이 생겼다. 산도 강도 매일 다른 얼굴을 내민다.

해가 비추는 각도에 따라,

구름의 표정 하나에 따라,

풍경은 스스로를 바꾼다. 그걸 보며 알게 됐다. 나도 내 풍경을 바꿀 수 있다는 걸.


사람도 마찬가지다. 누구는 에너지를 건네고, 누구는 에너지를 다 퍼간다. 정리되지 않은 관계는 지저분한 서랍 같아서, 열 때마다 마음이 어지러워진다.

큰딸은 인간관계의 폭이 좁다. 그렇지만 깊다. 대학 시절 함께 기숙사 생활을 했던 룸메들과 지금도 여전히 만남을 이어간다. 쉽게 인연을 맺지 않지만 한번 맺은 인연을 오래 들여다보는 힘이 있다. 그 모습이 가끔 부럽다. 내게 없는 어떤 단단함이 딸에게는 있다.


인간관계는 숫자가 아니란 걸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모든 만남이 나를 채워주는 것은 아니니까. 오히려 적게 만나고 깊게 나누는 것이 내겐 더 잘 맞는 방법이었다.

물을 무서워하던 내가 수영장에서 처음 숨을 내쉰 날, 그 작은 숨이 내 마음의 물결을 가라앉혔다. 그리고 이제는, 사람 사이에서도 숨 쉴 틈을 만들고 있다. 조용히, 나의 속도로.

KakaoTalk_20250522_080858356.jpg 살아갈 날들을 위한 괴테의 시 中

https://youtu.be/rhPyxM8tXxw?si=97QFOtleQxY3pm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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