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갈 날들을 위한 괴테의 시, 필사 #34
운동화 끈을 조이며 집을 나섰던 봄날 아침, 체중계의 숫자가 처음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50대 이후 한 번도 바뀔 생각을 하지 않던 몸무게는 아들 결혼식을 한 달 앞두고 마침내 미끄럼을 타기 시작했다. 굶지 않았고, 억지로 버티지도 않았다. 내게 맞는 다이어트를 찾은 것이다. 내 몸에서 떠나지 않던 살들이 하나 둘 손에 손을 잡고 떠나기 시작했다.
하루하루 살 빠지는 재미에 푹 빠졌다. 평생 한 번 신랑 엄마라는 혼주가 되는 길목에서 대단한 결심을 했다. 10kg만 감량하자. 사진은 평생 남는데 이쁜 모습을 남기자. 성공했다. 하지만, 결혼식이 끝나자 마음 한구석에서 ‘툭’하고 끈 풀리는 소리가 들렸다. 목표가 사라지자 의지도 함께 녹아버렸다. 다행히 요요는 오지 않았지만,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는 성경 말씀이 생각난다. 마음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다시 시작하면 빠진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 느슨해진 마음을 다시 다잡아 본다.
커튼 사이로 햇살 한 줄기가 들어온다. 창밖 나무들이 바람에 선율에 맞춰 춤을 춘다. 계절이 바뀌면 어김없이 새잎을 틔우고, 단풍으로 물든다. 나는 이 풍경을 앞으로 몇 번이나 더 볼 수 있을까. 혹시, 평생 볼 수 있을 거라고 착각하며 살고 있는 건 아닐까.
괴테의 말한다. "아는 것은 빠르면서 실행하는 것은 느린 게 인간이라고" 우리는 소년, 청년, 중장년, 노년의 시간을 건너며 인생을 배워간다. 지나간 인생길에 남는 건 후회뿐이다.
한국의 묘비를 보면 자녀 이름이 빼곡하다. 남기고 갈 수 있는 것이 그것뿐이라는 듯. 그렇다면 아이를 낳지 않은 이들의 묘비에는 무엇이 새겨질까. 누가 나를 기억해 줄까. 무엇이 나였다고 말해 줄 수 있을까.
내 묘비명에 무엇을 남길 수 있을까. 살았다는 기록 말고, 살아냈다는 증거는 없을까.
다시, 운동화를 꺼낸다.
다시, 체중계를 꺼낸다.
다시, 내 삶을 손질한다.
안다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몸을 움직이고 마음을 흔들어야 변화가 시작된다. 창밖 나무 한 그루가 유난히 선명하다. 묵묵히 바람을 맞고 있으면서도, 제철의 빛을 품고 선다.
흔들려도 괜찮다고, 그래도 견디겠다고. 마침내 나로 남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