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나는 이렇게 살았구나

by 서강


몸의 소리

아침에 신경외과에 갔다. 의사가 말했다. "좀 어떠세요?" "통증도 줄어들고 90% 정도 회복된 거 같습니다." "그래도 치료는 계속 받으셔야 합니다." 나는 7월부터 치료를 중단하려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체외충격파치료를 받는데 통증이 다시 살아났다. 그제야 내 몸이 아직 완전히 낫지 않았다는 것을, 나는 몸의 말로 들었다. 나는 내 몸을 혹사시켰고, 제법 오래 무시해 왔다. 내 안의 어떤 부끄러움이 고개를 들었다. 의사는 성의 없이 돈벌이하듯 말하지 않았다. 그의 말에는 진심이 있었다. 그 진심이 나를 붙들었다.



소통이 단절된 대화

점심에는 아이들과 냉면을 먹었다. 돈가스를 추가로 시켰다. "엄마가 새우가스 좋아하잖아." 새우를 좋아하는 엄마를 위해 새우가스도 주문하는 아들이 기특했다. 감사했지만, 대화 도중 나는 엉뚱한 말로 흐름을 끊었다. "저 초록색은 뭐지?" 매장 영상 속 돈가스 위 초록 고명을 보며 무심히 말을 던졌다. 아들은 말이 중간에 끊겼다며 "엄마는 왜 대화를 잘라, 독서모임에서도 혹시 그렇게 해?" 그 한마디가 비수처럼 꽂혔다. 잠들기 전 명상 시간에, 나는 생각을 되짚었다.

그 말은 사실, 이렇게 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엄마, 나는 대화할 때 중간에 말이 끊기면 대화하기가 힘들어." 그러면 나는 이해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들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고, 나 역시 "대화 중 미안한데, 잠깐 이 영상 좀 볼게"라고 정중히 말했으면 되는 거였다. 나는 깜빡이도 없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내 방식은 틀렸고, 아들의 방식도 완전하지 않았다. 우리는 둘 다 서툴렀다. 명상을 통해 소통의 부재, 언어의 부재를 알아차렸다.



양심일까? 방침일까?

점저를 마치고 접수된 물건 확인차 아파트를 다녀왔다. 사진 한 장 찍기 위해, 엘리베이터가 없는 줄도 모르고 오르기 시작한 계단을 1층에서 시작해 8층을 지나고, 다시 뒤편 산복도로를 따라 이어지는 또 다른 계단을 올라 12층에 도착했다. 무릎이 좋지 않아 중간에 그만둘까 수없이 생각했지만, 끝까지 갔다. 땀은 줄줄 흘렀고, 나는 숨을 몰아쉬었다. 카톡으로 보낸 사진을 본 아들은 "와, 진짜 좋다"라고 했다. 사진과 실물의 간극이 숨어 있음을 모르는 소리다. 이런 곳에 손님을 안내할 수 있을까. 엘리베이터도 없는 곳에, 과연 이곳에 살 마음이 생길까. 나는 내가 살 수 없는 곳은 남에게도 권하지 않는다. 내가 진심으로 좋아하지 않는 집은 보여주고 싶지 않다. 그게 내 나름의 영업 방침인지, 사람으로서의 양심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 마음을 나는 아직 버리지 못한다.



책 속에 분명 길이 있다.

책을 읽었다. '다독'과 '정독' 사이에서 갈등했다. 하지만 나는 한 책에만 몰두하는 것도 어쩐지 편식 같아 정답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나만의 방법을 찾았다. 많은 책을 두루 읽되, 단 하나의 책은 깊이 읽기로 했다. 정독과 다독을 동시에 하는 것이다. 지금은 『인생을 건너는 한 문장』을 정독 중이다. 욕심내지 않고, 정철 작가의 "인생을 건너는 한 문장"을 펼쳐든다. 내가 건넌 한 문장을 찾아본다. 그리고 림태주 작가의 "오늘 사랑한 것"을 읽으며 오늘 내가 사랑한 것은 무엇인지 사색하게 된다.

나는 아침 해를 만나기 위해 1층으로 내려갔다. 해의 광선이 얼굴과 어깨, 팔과 다리를 쓰다듬었다. 해는 나와 함께 출근했고, 나와 함께 퇴근했다. 나는 하루 종일 해를 보지 못했지만, 해는 한 번도 나를 떠난 적이 없었다. 저녁 무렵, 평소엔 지나치던 신호등 앞에서 차를 세우고 좌회전을 했다. 아파트 앞에 차를 세우고, 석양을 바라봤다. 카메라에도 담고 눈에도 마음에도 담았다. 어쩌면 오늘이 아니면 못 볼 것 같은 그 장면이, 오늘의 나를 남겼다.



확언 속 진주 발견

나는 매일 확언한다. "나는 부를 끌어당기는 자석이다." 이 문장을 수없이 되뇌다 문득 영감이 왔다. 중요한 건 '부'가 아니라 '자석'이라는 사실에 멈춰 섰다. 자석이 준비되어 있으면, 부는 자연히 자석에게로 끌려서 달라붙는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그 깨달음에 소름이 끼쳤다. 결국 내가 부를 다스릴 준비가 될 때, 세상 좋은 것들이 내게 끌려온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순간이다. 단어 하나에도 생명이 있고, 의미가 있고, 삶이 담겨 있다. 이런 문장을 알아차릴 수 있는 감각이 생긴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명상의 시간

명상은 오늘 나의 걸어온 발자국을 따라가는 시간이다. 오늘을 어떻게 살았는가. 나는 대답한다. 나는 오늘도 내 루틴을 지켰다. 명상하고, 확언하고, 스트레칭하고, 낭독하고, 필사하고, 글 쓰고, 독서하고, 명상하고, 그렇게 하루를 루틴대로 살아냈다. 내일 죽는다 해도, 나는 루틴대로 살 것이다. 그게 나의 길이고, 나의 방식이다. 오늘 나는 그렇게, 나를 살아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배움의 문턱에서 받아 든 기말고사 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