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렇게 화가 났어?

by 서강


자정이 다 된 시각, 스마트폰에 알림이 울렸다. CCTV 화면 속 세탁기 앞엔 낯선 여자가 있었다. 팔 가득 인형을 끌어안고, 그것들을 한 움큼씩 집어넣고 있었다.
솜이불, 베개, 인형은 세탁 금지라고 크게 적어둔 스티커는 무색했다.

아, 역시나. 조금 뒤 손님에게서 연락이 왔다.


“에러가 났어요. 작동이 안 돼요.” 그 말 한마디가 내 속을 들쑤셨다.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지만, 이해만으론 어쩌지 못하는 감정이 있었다.

이 시간에, 이 상황에,
그 무신경한 행동에 화가 났다.


바쁘게 뛰쳐나가는 막내의 뒷모습을 보면서 괜히, 정말 괜히 막내에게 짜증을 냈다.
“그렇게 사람들 말귀 못 알아듣는 것도 문제야. 붙여놨으면 좀 읽고 좀 조심하지…”
하지만 그 말은 손님을 향한 것도, 세탁기를 향한 것도 아닌, 그저 어설픈 내 감정의 탈출구였을 뿐이다.


혼자 남겨진 집 안에서 문득 창문 건너에 또 다른 나와 마주쳤다.
불 꺼진 거실, 희미하게 비친 내 표정은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지쳐 있었다.

“왜 그렇게 화가 났어?” 내가 내게 물었다.
정말 손님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자꾸만 똑같은 실수와 반복되는 고장이, 마치 내 삶이 엉켜버린 상징처럼 느껴졌기 때문일까.


아직도 나는 이런 감정을 다스리는 일이 서툴다. 성장했노라 믿었던 마음이 가장 사소한 밤의 틈에서 또다시 연습장을 펼친다.

이 숙제, 오늘 밤도 풀지 못한 채 나를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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