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농장은 평일에 가면 안 되나요

by 서강


지인이 농장에 초대를 받았다.
농장이라기에 그저 텃밭 정도로 생각한다.
상추 몇 줄, 고추 몇 그루 자라는 소박한 마당쯤이겠거니.

그런데 막상 도착해 보니, 텃밭이 아니라 아주 멋진 농장이다.


도로변에 가지런히 놓인 밭이랑
웬만한 농부 못지않게 손이 많이 간 주인장의 손길이 느껴진다.

차를 타고 가다 잠시 들른다는 느낌도 좋다.
멀리 가지 않아도 이런 곳이 있어 감사하다.


아스팔트에서 흙으로 발을 옮기는 순간,
오래된 기억 하나가 스르르 피어난다.
이모 집에서 밭이랑을 고르던 어린 시절.
외할머니가 안 계셔서 방학 때면 이모집을 갔다.
이모를 따라 밭에 가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그땐 몰랐는데, 흙이 이렇게 귀하고 그리운 것이었구나.


“이 감자 좀 보세요.”

지인이 감자 줄기를 끌어당기자 땅콩처럼 숨이 있던 감자들이 “저 여기 있어요!” 하고 주렁주렁 앞다투어 고개를 내민다. 숨바꼭질하던 아이들이 뛰쳐나오는 듯하다. 당근밭에서는 수줍은 붉은 기운이 비쳐 나온다. 흙을 툭툭 털어내자 제 얼굴을 드러낸다. 마트에서 사다가 냉장고에 넣어둔 것과는 사뭇 다르다.


불 위에 다소곳이 올라진 감자는 바삭 촉촉하게 변신한다. 지금껏 먹은 감자 중 제일 맛있다. 고기와 어울린 그 풍미는 입으로만 먹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도 먹는다. 흙을 만지고 있자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인간은 흙에서 나서 흙으로 돌아간다는 말이 진리구나.


흙냄새를 몸이 먼저 안다.
우리도 결국 이 흙과 다르지 않다는 걸.

농장 옆으로 개울이 흐른다.
졸졸졸, 끊이지 않는 물소리가 소음으로 지친 귀를 정화시킨다.

당당함을 뽐내는 정자나무,
비가 오지 않았다면, 나무 아래 평상에 누워 어릴 적 매미소리가 점점 멀어지는 느낌에 스르르 잠들듯 느긋하게 낮잠이라도 잤을까. 그러지 못하는 게 못내 아쉽다.


빗소리와 어우러진 삼겹살 굽는 소리에 "우와"하고 탄성이 쏟아진다. 제대로 된 힐링 중이다. 정자나무 잎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 졸졸 흐르는 개울 소리, 그리고 삼겹살이 익는 소리가 조화를 이룬다.


아주 평번한 하나하나가 모이니 이렇게 특별해진다. 사람들이 입을 모아 “감사합니다”를 따발총처럼 연발한다. 그날이 내 평생 ‘감사합니다’를 가장 많이 듣고, 가장 많이 말한 날이다. 진심이 담긴 고마움은 입에 담는 순간, 마음까지 따뜻하게 덥힌다. “참 좋다." 누군가가 조용히 말한다. 모두 한 마음이다. 특별할 것 없는 점심인데 왜 이렇게 좋은 걸까. 아마도 자연을 배경 삼아 좋은 사람들과 함께해서겠지.


행복이란 멀리 있지 않다.
손만 뻗치면 내 곁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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