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에서 교통사고 소식이 흘러나온다. 화면 속 부서진 차량을 보며 나도 모르게 안도했다. '나는 저런 일이 없어서 참 다행이야.' 그러고는 채널을 돌렸다. 마치 불행이 남의 일인 양.
우리는 모두 그렇다. 남의 고통 앞에서 위로의 말을 건네지만, 마음 깊숙한 곳에서는 속삭인다. '내가 아니어서 정말 다행이다.' 이게 솔직한 인간의 모습이다.
하지만 어느 날 깨달았다. 나 역시 그 뉴스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아니, 언젠가는 반드시 될 것이라는 사실을. 단지 순서만 다를 뿐이다.
엄마가 중풍으로 쓰러져서 응급실에 갔을 때가 떠오른다. 건너편 침상에서 남편의 마지막을 지켜보던 아내의 통곡소리가 들려왔다. 그저 짠한 모습으로 쳐다만 보고 있었다. 마치 나에게는 전혀 일어나지 않을 일인 것처럼,
맑고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며 생각한다. 저 하늘 아래 누군가는 웃고, 누군가는 운다. 그리고 나는 언제든 그 누군가가 될 수 있다.
더 궁금한 건 이것이다. 남의 기쁨을 진심으로 축하해 주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친구가 승진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가슴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감정은 축하일까, 아니면 질투일까?
우리 마음속에는 작은 악마가 숨어있다. 나만 불행하지 않고 성공하면 된다는 아주 고약한 심보가 있다. 그 악마는 가끔 고개를 들어 속삭인다. "쟤는 왜 저렇게 잘 될까?"
그래서 결심한다. 나답게 살기로. 남들과 비슷하지 않게. 지인들의 좋은 소식에 크게 기뻐하며 축하해 주리라, 과할 정도로 리액션을 하면서 진심을 담아서, 고마운 일이 생기면 감사를 표하리라. 말로, 행동으로. 우주가 놀랄 정도로,
길을 걷다 우연히 만난 꽃을 보며 카메라에 담는다. 예전 같으면 그냥 지나쳤을 텐데. 이제는 멈춰 선다. 그 꽃이 피어난 오늘이 특별하다는 걸 안다. 내가 그 꽃을 본 이 순간이 다시 오지 않는다는 걸 안다.
나를 나답게 만드는 법을 하나씩 터득해 간다. 남의 불행에 안도하는 대신, 남의 기쁨에 함께 웃는 사람이 되어간다. 남들이 그러니까 나도 그래도 된다는 착각 속에서 벗어나 진짜 나를 알아가는 여정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