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갈 날들을 위한 괴테의 시, 필사 #74
“나는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그냥 견디고 있는 걸까?”
그날 계약서를 내려놓은 손등에, 고객이 두고 간 음료수 한 박스가 놓여 있었다. 말 한마디 없었지만, 그 마음은 오래 남았다. 나는 그 자리에 앉은 채 한참을 움직이지 못했다. 부동산 중개 사무실에 근무한 지 2년째. 처음엔 설렜다. 사람들의 사연을 듣고, 그들에게 꼭 맞는 공간을 찾아주는 일이 내게는 작지만 의미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자 마음이 흔들렸다. 계약서를 쓰던 중 말을 바꾸는 고객, 예의 없이 함부로 말하는 사람, 약속을 하고 노쇼를 내는 사람, 종일 다양한 사람을 상대하고 나면 몸보다 마음이 더 피곤해졌다. 이 일이 정말 내가 ‘좋아하는 일’이 맞는지 점점 헷갈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말한다. “좋아하는 일을 하니까 좋겠다.” “네가 하는 일은 참 쉬워 보여.” 쉬워 보이는 건, 내가 그만큼 반복해서 익숙해졌다는 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익숙함 안에는 수많은 감정의 파도가 있었고, 그걸 다 말할 수 없었다.
요즘 나는 자주 묻는다. 나는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견딜 만한 일을 하며 좋아하는 것에 기대고 있는 걸까. 주말이면 시집을 읽고, 혼자 조용히 영화를 본다. 그건 분명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다. 하지만 그건 ‘일’이 아니라 ‘쉼’이다. 좋아하는 일은 책임이 따르고, 좋아하는 것은 위안을 준다. 그래서 우리는 좋아하는 ‘것’을 통해 좋아하려 애쓰는 ‘일’을 견딘다.
그러다 가끔, 마음을 붙잡아주는 순간이 있다. 집을 구한 신혼부부가 인사를 전하러 다시 찾아올 때. 이사를 마친 할머니가 떡을 들고 오셨을 때. 그 순간, 나는 이 일이 괜찮은 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견딜 만한 일이 아니라, 때때로 보람이 흐르는 일이라고.
책갈피 속에서 괴테의 문장이 흘러나온다.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 나는 그 문장을 다시 조용히 끼워 넣었다. 방황하고 있다는 것은 노력한다는 증거이기에 또다시 흔들릴 날이 올 것이다.
그 어느 날, 여전히 이 질문 앞에 서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그냥 견디고 있는 걸까?” 하지만 어쩌면, 이 질문을 멈추지 않는 삶이 이미 충분히 의미 있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