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를 보내야 할까, 말아야 할까. 핸드폰을 들었다 놓았다를 반복했다. 2년 전 그날이 떠올랐다. 친구에게서 문자가 왔다. 그런데 친구가 아니다. 이 문자는 뭐지? 불길한 예감이 엄습해 왔다. "엄마가 세상을 떠나셨어요"
정아. 그 이름을 부르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다. 며칠 전 친구 기일이 지났다. 마음 한편이 자꾸 짓누르는 듯 편하지가 않다. 장례식장에서 본 친구의 자녀들이 떠올랐다. 친구를 꼭 닮은 눈을 하고 있었다. 이십 대 아이들이 상주석에 앉아 조문객들에게 고개를 숙이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때 나는 무엇을 해줄 수 있었을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친구의 영정 앞에 국화꽃을 놓고 돌아섰을 뿐이었다.
"안녕하세요 정아 친구입니다." 한 글자 한 글자 천천히 적었다. 지웠다가 다시 적었다. "친구 기일이 지나갔네요. 장례식 이후 한 번도 안부를 묻지 못해 연락드려요. 엄마가 하늘에서 항상 지켜볼 거예요." 전송 버튼을 누르고 나서야 숨을 쉴 수 있었다. 혹시 부담스러워하지 않을까, 혹시 아픈 기억을 건드린 것은 아닐까. 작은 후회들이 밀려왔다.
그런데 답장이 왔다. 생각보다 빨리.
"안녕하세요. 연락 주시고 기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엄마도 이렇게 좋은 친구분을 만나서 행복하셨을 거예요. 항상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 스마트폰 화면이 흐려졌다. 그 아이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엄마를 기억해 주셔서 고맙다고. 엄마가 좋은 친구를 만나서 행복했을 거라고. 이십 대 초반의 아이가 이런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상실 앞에서도 이렇게 따뜻할 수 있다는 것이.
어쩌면 이별은 끝이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떠나간 후에도 남은 사람들 안에서 계속 숨을 쉰다. 그의 말투에서, 그의 웃음에서, 그의 따뜻함에서. 정아는 딸에게 물려준 것이 많았다.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 고마움을 표현하는 방법, 슬픔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힘.
기억한다는 것, 잊지 않는다는 것. 그것이 우리가 떠나간 이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일지도 모른다. 정아야, 네 딸은 잘 자라고 있어. 너처럼 따뜻한 마음으로 사람들을 품고 있어. 그러니까 이제는 마음 놓고 쉬어도 돼. 우리는 기억하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