된장찌개와 라면의 만남

by 서강


된장국 속에서 발견한 우주


– 남은 국물로 하루를 끓이다


냉장고 문을 열었을 때의 그 서늘함. 며칠 전 먹다 남긴 된장국이 묵직한 그릇 속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버리자니 아깝고, 그대로 먹자니 심심하고.'
잠시 망설이다 라면 한 봉지를 풀어 넣었다. 가스레인지 위에서 팔팔 끓어오르던 국물 속으로 면발이 천천히 스며들었다. 마치 시간이 물속으로 가라앉는 것처럼.


된장의 구수함이 며칠간의 침묵을 깨트리고, 오늘의 허기를 따뜻하게 감쌌다. 파 한 줌, 두부 몇 조각, 그리고 라면 한 봉지. 이 단순한 조합이 어쩐지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어쩌면 이건 음식이 아니라, 기억일지도 몰랐다. 엄마가 자주 해주던 국, 혼자 살던 자취방에서의 끼니, 아이들이 어릴 적 "국 말아줘!" 하던 목소리들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그릇 속에서 되살아났다.


그때는 몰랐다. 이 평범한 국물 속에 우주가 숨어 있다는 것을. 면발은 시간을 되감고, 된장은 마음을 데우며, 오늘의 나는 어제의 국물로 하루를 끓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조금 더 나를 이해할 수 있었다.
작은 국물 한 그릇이 삶을 끓이고, 기억을 말고, 우주를 데우고 있다.


젓가락으로 라면을 들며 생각했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남은 국물로 하루를 끓이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 국물 속에서, 우리 각자의 우주를 발견해 가는 것은 아닐까.
마지막 한 숟가락을 떠넘기며, 나는 알았다. 진짜 맛있는 건 음식이 아니라, 그 음식을 먹는 순간의 나였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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