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사는 인생,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 필사 #12
서울에 있는 조카가 다니러 왔다. 아들과 셋이 맥주잔을 기울이던 중, 아들이 먼저 말을 꺼냈다.
“무인빨래방을 구상하고 있어.”
잠시 침묵이 흐르고, 조카가 웃으며 대답했다.
“그건 이미 유행 지났잖아, 오빠.”
“요즘 애견무인샵이 서울에서 핫해. 고모는 강아지도 좋아하니까, 괜찮을 것 같아.”
조카의 말이 반짝이는 제안처럼 들렸다. 행동파인 나는 곧장 부산 곳곳의 애견무인샵을 둘러보았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했던가. 시장조사는 결국 발로 뛰면서 직접 눈으로 확인해야 한다는 걸 더 절실히 깨달았다. 현장은 생각보다 조용했고, 매력적이지 않았다.
MZ세대의 촉은 예민하고 빠르다. 그 말 한마디에 흔들릴 법도 했지만, 이번만큼은 철저한 시장조사, 상권 분석, 배후세대등을 진단하기로 했다.
예전의 나였다면, 비전문가인 주변의 말만 듣고 시작을 하거나, 아니면 포기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나는 믿고 싶었다. 시장보다도, 통계보다도,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아들과 막내 그리고 나 자신을 말이다.
그래서 발로 뛰었다. 사람들의 일상과 불편, 기다림과 시간의 공백을 조용히 들여다보았다. 그 시간 속에 틈새는 있었다. 단지 내 건조기가 없다는 사실, 빨래를 기다리며 커피 한 잔의 여유를 누릴 수 있는 공간, 그리고 아이스크림 하나가 만들어주는 환한 미소. 그렇게 무인복합매장 ASECA가 탄생했다.
단순한 빨래방이 아니다. 아들과, 막내공주, 그리고 나. 셋이 머리를 맞대고, 발품을 팔며, 시간과 마음을 함께 들여 만든 첫 번째 합작품이다. 아무도 가지 않던 길 위에서 우리는 조심스럽게 발을 디뎠다. 그 조심스러운 걸음은 이내 사람들의 발걸음으로 채워졌다. 돌이켜보면, 그때 내가 믿은 건 시장이 아니라 내가 가고자 했던 방향, 그리고 그 방향을 향한 우리 자신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자는 자신을 믿는 사람이다. 그는 매일 자신에게 좋은 기회를 선물하기 때문이다.”
— 한 번 사는 인생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김종원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