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죄는 그 이름 며느리

그 아이에게는, 이름을 불러주고 싶다.

by 서강



올해는 유난히 기운이 없다. 몸이 먼저 안다. 마음보다 먼저 고장이 난다. 아무 이유도 없이 기운이 쑥 빠지는 날이 자꾸 늘어난다. 그럴 때마다 어딘가 헐렁해진 나를 누군가 조용히 알아봐 주면, 그저 고맙다.


얼마 전, 새 식구가 된 며느리에게서 연락이 왔다. “어머님, 요즘 기력이 없어 보이시던데 공진단 지어드릴게요.” 나는 괜찮다고 했다. 지난번 너무 기운이 없을 때 한 번 먹었더니 좀 나아졌다고, 그거면 됐다고 했다. 그런데도 며느리는 굳이 해주겠다고 고집을 부린다.

“어머니, 좋은 건 또 드셔도 되세요.”
“내가 정말 필요하면, 그때는 염치 내려놓고 사달라고 할게.” 서로 기분 좋게 웃으며 전화를 끊고 나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왜 내 시어머니와는 이렇게 지내지 못했을까. 마음 한편이 아려왔다. 나도 참, 잘 지내고 싶었다. 좋은 며느리가 되고 싶었고, 어색하지 않은 사이가 되길 바랐다.


그런데 그게 참, 뜻대로 되지 않았다. 누구의 잘못이었을까. 내가 모자랐던 걸까. 아니면, 서로 너무 달랐던 것뿐일까. 그 시절을 조용히 돌이켜본다. 공진단에 담긴 진심 어린 마음이 나를 아주 먼 기억 속으로 데려간다.




내가 며느리였던 시절, 시어머니는 ‘며느리는 초장에 잡아야 한다’는 전통 아닌 전통에 단단히 사로잡혀 있었다. 결혼 전에는 정말 잘해주시더니, 혼수 준비를 하며 돌변한 태도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실체를 본 나는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나 이 결혼 안 할래.” 엄마는 깜짝 놀라며 “그렇게 반대해도 고집을 부리더니, 집안에 다 말을 해놨는데, 이제 와서 그게 무슨 소리냐”며 나를 다독였다.


예비 시어머니는 아들을 시켜 내게 싹싹 빌라고 했다. 문제의 원인은 자기였다는 것도 모르고 헛다리를 짚으신 거다. 아니 고단수였다. 일단 결혼만 해봐라, 감히 네가 결혼을 엎으려고 해! 벼르셨던 것이다.


결혼 후 첫 명절, 시어머니는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은 채 방 안에서 호령만 했다.
“나물은 짜면 안 돼.”
“이건 이렇게 해라.”
“저건 저렇게 해라.”
정작 뭘 어떻게 하는지 가르쳐주진 않았다. 어이가 없었지만, 내 의견을 말하면 말대꾸한다고 나무라기 일쑤였다. 눈물을 삼키며 친정에서 어깨너머로 배운 기억을 더듬어 어찌어찌해 냈다.


차라리 할 줄 모른다고 했으면 됐을 걸, 지금 생각하면 참 영악하지 못했다. 시어머니는 무슨 대단한 며느리 훈련 프로그램이라도 되는 듯, 기강을 잡으려는 속셈을 훤히 내 비치셨다. 며느리를 맞이한 게 아니라 노예를 들인 줄 아는 시어머니가 꼴도 보기 싫었다. 모든 걸 내팽개치고 그냥 친정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시대라는 굳은살.
악습이라는 이름의 유산.
아무도 물려받고 싶지 않았던 것을 그들은 충실히 물려주려 했고, 나는 극구 거절하고 싶었을 뿐이다. 친정 엄마는 며느리에게 그렇게 대하지 않으셨기에 나는 그 문화에 도무지 적응할 수 없었다. 홀시어머니에 시골 장남 며느리를 보려니, 결혼 전엔 선한 양인 척하시다가 결혼과 동시에 본색을 드러내셨다.


시누이와 시동생이 차례로 결혼하던 해, 나는 설거지통에서 손이 퉁퉁 불어 터지도록 잔칫상에서 나온 그릇을 씻어야 했다. 그땐 집에서 잔치를 치르던 시절이라 설거지는 화수분처럼 끝없이 나왔다. 허리 한 번 제대로 펴지 못한 채 하루 종일 물때 묻은 접시를 붙들고 있던 나를 두고, 시어머니와 큰 시누이는 웃으며 잔치 분위기를 즐겼다. 눈에 가시처럼 미웠다.


오죽했으면 동네 아주머니가 안쓰러우셨는지 “고생한다”며 건넨 한마디에 참았던 설움이 폭발하며 눈물이 비 오듯 쏟아져 내렸다. 설거지통에 떠 다니는 기름기처럼 속이 미끈거리고 부글거렸다. 참고 또 참았지만 마음은 수십 번 그 자리를 벗어나 도망치고 있었다. 친정 엄마가 너무 보고 싶었다. 유일한 내 편. 그 시절 나는 며느리이기 이전에, 우리 엄마의 딸로 엄마 품이 그리웠다.


여러 사건 이후, 시어머니와 시댁 식구들에게 내 마음의 문은 점점 빗장을 잠그기 시작했다. 그 문틈 사이로 작은 먼지 하나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마음은 늘 도망칠 구실을 찾았고, 몸은 자꾸만 그 자리를 피하려 했다. 눈이 마주칠까, 말이라도 섞일까 자리를 피하기 바빴다. 시댁 식구들의 웃음소리는 어쩐지 나만 빼놓고 나눈 비밀 같았으나, 그 안에 섞이고 싶은 마음보다 멀찍이 떨어지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시댁에서 멀리, 더 멀리 벗어나고 싶었다.



그 시절 나는 ‘며느리’라는 이름 안에 나를 가둔 채, 그저 당연한 듯 그 생활을 받아들이며 살아남는 법을 익히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너무 호된 시집살이를 해서일까. ‘며느리’라는 옥죄는 이름에서 벗어나, 시어머니라는 이름표를 달았을 때, 내 며느리에게는 그 이름을 씌워주고 싶지 않았다.


그 이름 대신, 이쁜 그 아이의 이름을 불러주고 싶다. 편하게 다가올 수 있는 사람이길 바랐고, 참아내는 사이가 아니라 속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이가 되길 바랐다.


‘며느리’라는 말보다, 한 사람으로서 서로를 존중하는 관계. 고부간 갈등의 고리를 내 대에서 싹둑 잘라내고 싶다. 이전 세대의 그림자를 물려주고 싶지 않다. 내가 견뎌낸 시간으로 그 아이의 시간을 가두고 싶지 않다.


며느리를 딸보다 더 아끼고 사랑하리라. 그 아이 역시 멋진 부모님 품에서 자란 귀한 딸이었음을 잊지 않으리라. 상처를 물려주지 않는 어른으로 남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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