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 속의 연인-
늦여름.
무더위를 식히기라도 하듯,
가을 첫 숨결이 묻은 비가 내린다.
비가 오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오래된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빛이 바랠 법도 한데
세월이 흐를수록 오히려 더 또렷해진다.
결혼 전, 남편과 데이트하던 시절.
그 무렵 나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다가
남자친구(훗날 남편)의 권유로 고압가스 학원을 다녔다.
남학생이 훨씬 많은 그곳에서
여학생은 꽃 중의 꽃이었다.
남학생들의 시선을 뒤로한 채
수업이 끝나면 남편을 만나 데이트를 즐겼다.
그날은 비가 와서 우산 하나를 받쳐 들었고,
남편이 내 어깨에 손을 얹은 채 나란히 걸었다.
우산 끝에서 똑, 똑, 여름의 끝이 떨어지던 즈음
맞은편에서 오던 학원 남학생과 눈이 마주쳤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 날 학원에 가니
“어제 그 우산 속 커플이 너였구나” 하는 말이 오갔다.
지금 생각하면 시시콜콜한 이야기지만,
그 시절엔 가슴이 두근거릴 만큼 큰 화젯거리였다.
은근한 인기를 누리던, 내 청춘의 한 페이지.
“나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지.”
비가 내리는 날이면,
그날의 우산 속 남과 여가 속삭인다.
기억해 줘서 고맙다, 그 말도 빗소리에 섞여 흘러간다.
여전히 내 기억 속에서, 그들은 파릇파릇한 청춘이다.